1.
이 의문스러운 책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분명 순위와 매력에서 제일가는 질문, 그것도 내밀한 개인적 질문이었다—이에 대한 증거는 이 책이 기원한 시기이다. 1870/71년 보불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기원했던 것이다. 뵈르트 전투의 뇌성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이 책의 아버지격 되는 골몰자, 난해한 것을 좋아했던 자는, 몹시 골머리를 앓으며 복잡해진 머리로, 그래서 몹시 침울하면서도 침울하지 않은 가운데, 알프스 벽지 어드메에 자리를 잡고서 그리스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적어나갔다, —기이하면서도 접근하기 까다로운 이 책, 이 뒤늦은 서언 (혹은 후기)가 헌정될 이 책의 핵심1을. 그러기를 몇 주간,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예술의 이른바 “명랑함”2에다 달아놓았던 물음표에서 그제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메츠의 성벽 아래3에서도 여전하기만 한 제자신을 그는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베르사이유에서 평화조약을 논의하던 그 팽팽한 긴장의 달에 마침내 그 역시 제자신과 평화를 이루게 되었고, 전장에서 집까지 따라온 질병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가운데, 마침내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을 차분하게 확정하였다. —음악으로부터? 음악과 비극? 그리스인들과 비극-음악? 그리스인들과 비관주의의 예술작품? 이제까지의 인간들 중에서 가장 잘 살았던, 가장 아름다왔던, 최고로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라고 최고조로 유혹하는 부류인 그리스인들이—어떻게? 바로 그들에게 비극이 절실했다고? 더 나아가—예술이? 무엇을 위하여—그리스인들의 예술이? . . .
이리하여 사람들은 궁리해 본다. 어떤 지점에 현존의 가치와 관련한 커다란 물음표가 찍혀 있었을까. 비관주의는 필연적으로 쇠퇴, 추락, 몹쓸 것, 지치고 쇠약한 본능의 표일까? —인도인들의 비관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모로 보나 우리 “현대” 인간과 유럽인들의 비관주의가 그런 것처럼? 강함의 비관주의는 없을까? 현존의 축배, 넘쳐흐르는 건강, 충만에서 비롯하는 지적인 편향, 곧 ‘현존의 고됨, 수치, 악, 문제거리’를 향한 지적인 편향은 없을까? 혹시 충일充溢 자체로 인한 고통은 없을까? 더없이 날카로운 눈매의 유혹적인 늠름함은? 곧 무서운 자를 염원하되 제 힘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적으로서, 존경할 만한 적으로서, “무서움”이 무엇인가를 한 수 가르쳐줄 만한 적으로서 염원하는 늠름함은? 다름아닌 가장 훌륭하며 가장 강하며 가장 늠름한 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적 신화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디오뉘소스적인 것의 무시무시한 현상은? 그로부터 탄생한 비극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비극을 죽게 한 것, 도덕의 소크라테스주의, 이론적 인간의 변증술, 충족성, 명랑함—어떤가? 바로 이 소크라테스주의가 쇠퇴·피로·병듦의 표, 무정부식으로 헤치는 본능의 표일 수는 없겠는가? 그리고 후대 그리스의 “그리스적 명랑함”이 단지 하나의 황혼일 수는 없겠는가? 비관주의에 대항하는 에피쿠로스적 의지가 단지 고통당하는 자의 조심성일 수는 없겠는가? 그리고 학문 자체, 우리의 학문—그렇다, 모든 학문이 삶[이 병들었다는] 증상으로 보인다면, 학문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모든 학문은—무엇을 위한 것인가, 더 심하게 말해,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인가? 어떤가? 혹시 학문성은 단지 비관주의에 대한 무서움이요 도피에 불과하지 않을까? 진리—에 대항하는 절묘한 긴급방어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도덕적으로 말해, 비겁함, 허위 따위가 아니겠는가? 비도덕적으로 말해, 영리함이 아니겠는가? 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여, 이게 혹시 너의 비밀이었는가? 오 비밀 투성이의 반어자여, 이게 혹시 너의 것—반어였는가? —
2.
당시 내가 붙들게 되었던 것, 뭔가 무섭고 위험한 것, 뿔달린 하나의 문제, 반드시 한 마리 황소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하나의 새로운 문제: 지금의 나라면 말하리라, 그것은 학문의 문제 자체였노라고—처음으로 학문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의문스러운 것으로 포착되었노라고. 그러나, 당시 나의 청년기 용기와 의구심이 담겨 있는 이 책—어떤 부류의 불가능한 책이 그토록 청년기에 반하는 과제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그야말로 때이르고 시퍼런 자기 체험, 곧 모든 것이 전달 가능성의 한계에 육박했던 자기 체험으로부터 지어올려져 예술의 토대 위에 세워졌으므로—학문의 문제는 학문의 토대 위에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분석적이고 회고적인 능력을 부수적으로 갖춘 예술가(사람들이 찾아야 하지만 단 한번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예외적인 부류의 예술가를 뜻한다)를 위한 부류의 책, 심리학적인 혁신들과 아티스트의 비밀들이 가득한, 아티스트 형이상학을 배경에 두고 있는 부류의 책, 청년의 용기와 청년의 침울이 가득한 청년의 작품, [타인의] 권위와 그 나름의 존경 앞에 몸을 숙일 만한 곳에서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무모하게 독자적이며, 노숙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갖은 결점, 무엇보다도 “여러 곳에서의 지나친 장황함”, “질풍과 노도”가 딸려 있는, [처녀작이라는] 말의 갖가지 나쁜 의미를 그대로 두고 말하더라도 한 마디로 처녀작이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특히 단둘이 대화를 나누듯 대화 상대로 삼았던 위대한 예술가에게서, 리하르트 바그너에게서) 거두었던 성과를 감안해 보자면, 증명된 부류의 책이다, “당대의 일류 인사들”4에게 만족을 주었을 정도의 책이라는 말이다. 그 점을 유의하자면, 확실히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배려하고 묵인하면서 이 책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감추고 싶지 않다. 지금 나에게는, 16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세월을 더 겪은, 백배나 더 까다로워진, 그러나 결코 더는 차가워지지 않은 눈에는, 이 책이 얼마나 불편하고, 이 책이 얼마나 생소한가. 그러면서도 이 눈에는 생소하지 않은 바가 있으니, 저 대범한 책이 처음으로 과감하게 접근한 과제야말로 그렇다—학문을 예술가의 광학으로 보아야 하는, 아니 예술을 삶의 광학으로 보아야 하는 과제 . . .
3.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 나에게는 불가능한 책이다, —나는 이르노라, 이 책은 서투르게 쓰여졌노라고, 둔중하며, 힘겨우며, 비유가 난무하고 꼬여 있으며, 감정적이며, 여기저기 여성주의적으로 보일 정도로 달며, 템포가 일정하지 않으며, 논리적 깔끔함의 의지 없이, 과신하면서, 하여 증명을 피하고, 증명의 예절을 불신하기까지 하면서, 통달자를 위한 책으로서, ‘음악’이라는 영세명을 받은 자들, 곧 사물들의 태초부터 공통적이면서도 희귀한 예술 경험들에까지 잇닿아 있는 자들을 위한 “음악”으로서, 예술들간의in artibus 혈연을 알려 주는 인식표로서 쓰여졌노라고, —처음부터 “민중”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교육받은 자들”이라는 통속적 평민들profanum vulgus에 대하여 청산하려는 용기백배하고 열광적인 책으로서, 그러나 그 영향이 예나 지금이나 증명하고 있다시피, 열광의 동참자들을 찾아 분명코 그들을 새로운 지름길을 통하여 무도장까지 유혹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부류의 책으로서 쓰여졌노라고. 사람들이 애써 꺼리면서도 참신함을 느껴 이를 실토하였거니와, —하나의 생소한 음성이, 그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 신”5의 사도가, 한때 학자의 두건 아래에, 독일인의 무거움과 변증술의 무료함 아래에, 다름아닌 바그너 추종자들의 몹쓸 행색 아래에 은신하기도 했던 자가, 어찌하였든 여기에서 말했다; 아직까지도 이름을 붙힐 수 없는 생소한 욕구를 가진 하나의 정신이 여기에 있었다. 디오뉘소스라는 이름이 마치 하나의 물음표처럼 곧잘 따라붙었던 질문들, 경험들, 은폐물들로 가득찬 하나의 기억이 있었다; 사람들이 의혹을 가지고 말했거니와, —신비적이고 거의 마이나데스적이기까지 한 영혼과도 같은 그 뭔가가, 수고롭게, 자의적으로, 전할 것이냐 은폐할 것이냐를 거의 결정하지도 못한 채, 꼭 이방인의 혀처럼 더듬거리는 영혼과도 같은 그 뭔가가, 여기에서 말했다. 그 영혼이, 그 “새로운 영혼”이 노래를 했더라면—이야기로 하지 말고! 내가 당시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시인이 되어 과감히 말하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유감이냐: 필경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었으련만! 아니면, 적어도 문헌학자라도 되어 말할 것을! —오늘날 아직까지도 여전히 이 영역에서는 문헌학자를 위하여 거의 모든 것이 발견하고 발굴할 거리로 남아 있거늘! 무엇보다도 문제로구나, 하나의 문제가 여기에 제시되어 있으니,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 디오뉘소스적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한,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들을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고 전혀 표상할 수도 없으니 . . .
4.
그렇다, 무엇이 디오뉘소스적인가?—이 책에는 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있다, —한 명의 “지자”, 자신의 신에게 헌신한 제자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다.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서의 비극의 근원인 만큼, 지금의 나라면 그토록 무거운 심리학적 물음에 관하여 아마도 좀더 신중하게 그리고 좀더 말을 아껴 이야기했으리라. 그리스인의 고통과의 관계, 그의 감수성의 정도가 하나의 근본 물음이다—이 관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는가? 아니면 반전되었는가? —갈수록 강렬해지는 아름다움에의 염원이, ‘제전, 욕망할 만한 것들, 새로운 제의’에의 염원이, 정말로 결여·결핍·우울·고통으로부터 자라난 것인가 하는 물음! 바로 이게 참일 것이라고 가정한다면—그런데, 페리클레스 (혹은 투키디데스)는 이것을 위대한 장례연설6에서 우리에게 이해시켜 주고 있다—: 그렇다면, 시기상으로 더 이르게 등장했던 반대편의 염원, 추함에의 염원, ‘비관주의, 비극적 신화, 현존의 근저에 있는 온갖 무서운 것, 수수께끼, 소멸자, 숙명’을 향한 옛 헬라스인의 진정 강한 의지는 어디에서 유래해야 하는 것인가? 혹시 욕망, 힘, 물밀듯 넘치는 건강, 넘치도록 거대한 충만으로부터? 그렇다면, 생리학적으로 말해, 비극 예술과 희극 예술을 자라나게 했던 광기, 디오뉘소스적 광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가? 혹여 광기가 필연적으로 변질, 쇠퇴, 뒤늦은 예술의 증상이겠는가? 혹여—정신과 의사에게 묻노니—건강함의 노이로제, 민족청년단과 민족청소년단의 노이로제는 없는가? 신과 염소가 합해진 사튀로스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무슨 자기 체험에서, 무슨 격랑을 타려고, 그리스인은 디오뉘소스적인 열광자이자 원초 인간을 사튀로스로 생각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비극 가무단의 근원과 관련하여: 그리스인의 몸이 활짝 피어오르고 그리스인의 영혼이 삶의 포말泡沫로 흘러넘쳤던 수세기 동안에 혹시 풍토병적인 황홀이 있었던 것일까? 전체 마을로, 전체 제의집회로 번졌던 환영들과 환각들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가? 그리스인들이 다름아닌 그들 젊음이 풍요로울 때에 비극적인 것에의 의지가 있었고 비관주의자들이었다면? 다름아닌 광기가 있었다면, 플라톤의 말을 쓰건대, 헬라스에 가장 위대한 축복들을 내렸던 광기7가 있었다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거꾸로 말해서, 그리스인들이 다름아닌 그들의 해체와 쇠약의 시기에 갈수록 낙관적으로 되고, 갈수록 피상적으로 되고, 갈수록 배우답게 되고, 또한 논리학과 세계의 논리화에 갈수록 발정하고, 그리하여 동시에 “갈수록 명랑해지고”, “갈수록 학문적으로” 되었다면? 어떤가? 온갖 “현대적인 이념들”과 민주정 취향의 편견들에도 불구하고, 혹시 낙관주의의 승리가, 우위를 차지하게 된 이성성이,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공리주의가, 이와 동시대를 누린 다름아닌 민주정과 마찬가지로, —’가라앉는 힘, 다가오는 노년, 생리적인 피로’의 증상일 수는 없겠는가? 바로 이게—비관주의가 아니라고? 에피쿠로스가 낙관주의자였는가—다름아닌 고통받는 자로서? — — 사람들은 이 책이 지고 있는 짐이 온통 육중한 물음 투성이임을 알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육중한 물음을 거기에 더 얹혀보자! 삶의 광학으로 보건대, 도덕은—무엇을 의미하는가? . . .
5.
이미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에서 예술이—도덕은 아니다—인간 본연의 형이상학적 활동으로 제시되었다; 책 속에서도 ‘세계의 현존은 오로지 미적인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는 무례한 문장이 몇번이나 되풀이된다8. 실제로, 책 전체가 오로지 모든 사건 배후에 있는 예술가의 의미와 예술가의 이면 의미만을 알 따름이다, —사람들이 신이라고 하고 싶다면 하나의 “신”, 그러나 확실히 아무 것도 괘념치 않는 비도덕적인 예술가-신, 지을 때나 부술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신의 한결같은 욕망과 자기 영광을 의식하려는 신, 세계들을 창조하면서 충만과 충일의 궁핍으로부터 벗어나는 신, 자신에게 밀려든 대립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신만을 [알 따름이다]. 세계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 가장 대립적인 것, 가장 모순적인 것’의 영원히 변천하고 영원히 새로운 환영으로서, 오로지 가상 속에서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매순간 달성한 구원이다: 이 아티스트 형이상학 전체를 두고 자의적이라고, 부질없다고, 환상적이라고 해도 좋다—, 본질적인 것은, 언젠가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현존에 대한 도덕적인 해답과 의미 부여에 대항하여 제자신을 방어할 하나의 정신을 아티스트 형이상학이 이미 흘려 두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선악 너머”의 비관주의가 고지되고 있으며, 쇼펜하우어가 나서서 지치지 않고 몹시 성난 저주와 벼락을 퍼부었던 “[정신]태도의 도착倒錯”9이 여기에서 언어와 공식을 걸치고 있다, —과감하게 도덕 자체를 현상의 세계 속에다 정립시켜 깎아내리려는, 그것도 가상, 망상, 오류, 해답, 정돈, 예술로 보아 (이상주의적인 전문용어terminus technicus의 의미에서) “현상들” 밑으로, 뿐만 아니라 “미혹들” 밑으로 깎아내리려는 철학이 [여기에서 언어와 공식을 걸치고 있다]. 아마도 적개심에 불타면서도 신중한 침묵을 보면 이 반도덕적인 성향의 깊이가 가장 잘 가늠될 것이다. 이 책 전체에 걸쳐 침묵으로 그리스도교를, —여태까지 인류가 경청하기에 이르렀던 도덕적인 주제가 한껏 빗나가 전개된 음형音型10으로서의 그리스도교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이 책에서 가르치고 있다시피, 순수하게 미적인 세계 해석과 세계-정당화에 대하여 가장 커다란 대립을 이루는 것은, 오로지 도덕적일 따름이며 도덕적이기만을 원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곧 저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예컨대 저의 신의 진정성을 가지고, 예술을, 갖은 예술을 거짓의 나라로 추방시키는—즉 부정하고, 벌하고, 판결하는—가르침이다. 아무튼 정직을 유지하는 한 예술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부류의 사고방식과 평가방식 배후에서, 삶에 대한 적대를, 삶 자체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복수를 불태우는 반의지反意志를, 나는 옛 시절부터 지각했다: 모든 삶은 가상, 예술, 미혹, 광학, 원근법적인 것과 오류의 필연성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으로, “다른” 혹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신앙 아래에서만 위장이 되는, 삶에 대한 삶의 구토요 혐오였다. “세계”에 대한 증오, 열정에 대한 저주, 아름다움과 관능 앞에서의 도피, 하나의 저세상은, 이세상을 비방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허무·종말·“안식일 중의 안식일”에의 염원을 생각해냈다—이 모든 것이 내게는 마치 오직 도덕적인 가치만을 인정하려는 그리스도교의 무조건적인 의지처럼 여겨지며, 항상 “몰락에의 의지”일 수 있는 온갖 형식들 중에서 위험천만하고 가장 섬뜩한 형식처럼, 적어도 더없이 심각한 삶의 중병, 피로, 불쾌, 고갈, 영락을 말해 주는 표처럼 여겨진다, —삶은 본질적으로는 뭔가 비도덕적인 것이므로 도덕 (특히 그리스도교적인, 즉 무조건적인 도덕) 앞에서는 삶은 지속적으로 어쩔 도리 없이 불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침내 삶은 경멸과 영원한 부정의 무게에 짓눌려 욕망할 만하지 못한 것, 무가치한 것 자체로서 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어떤가? 도덕은 “삶의 부정에의 의지”, 은밀한 소멸의 본능, 추락·위장·비방의 원리, 종말의 시초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따라서, 위험 중의 위험이 아니겠는가? . . . 그러므로, 이 의문스러운 책과 함께, 삶을 변호하는 본능으로서의 나의 본능은 도덕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틀었으며, 삶과 관련하여 [도덕과는] 철저히 반대되는 가르침과 반대되는 평가를, 순수히 아티스트적이고 반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과 평가를 생각해냈다. 그것들을 뭐라 부를까? 문헌학자요 말의 인간으로서 나는 그것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얼마간 자유롭게—누가 반그리스도Antichrist의 본명을 알리오?—, 한 그리스의 신의 이름으로: 나는 그것들을 디오뉘소스적인 것들라고 불렀다. —
6.
내가 진작에 이 책을 가지고 무슨 과제를 과감히 건드렸던가를 사람들이 이해할까? . . . 지금 보니 이 얼마나 유감스러운가, 그토록 고유한 직관들과 과감한 일들을 고려해 볼 때 나에게 고유한 언어를 마저 허할 만한 용기 (혹은 불손함?)을 당시 그때까지만 해도 가지지 않았다니, —내가 쇼펜하우어와 칸트식 공식들을 가지고 생소하고 새로운 가치 평가들을 힘겹게 표현하고자 애썼다니, 그 가치 평가들은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정신은 물론 그들의 취향과도 근본적으로 반대편에 있었던 것이어늘! 자, 쇼펜하우어는 비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집 495면11에서, “숭고함에 이르도록 모든 비극적인 것에다 특유의 도약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가, 삶이, 제대로 된 어떠한 충족도 줄 수 없다는 인식, 따라서 거기에는 우리가 충실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인식의 부각이다: 거기에 비극적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이 그리하여 체념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 오, 디오뉘소스는 내게 얼마나 다르게 이야기했던가! 오, 바로 이 체념주의 전반이 당시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가! —그러나, 쇼펜하우어식 공식들을 가지고 디오뉘소스적인 예감들을 침침하게 만들어 손상시킨 것보다 지금 더 유감스러운 것, 훨씬 더 나쁜 점이 이 책에 있다: 그러니까, 무릇 웅대한 그리스인의 문제가 내게 떠올랐을 적에, 내가 그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들과 뒤섞어 손상시켰다는 것! 아무 것도 희망할 수 없었던 곳에, 모든 것이 너무나 명백하게 하나의 종말을 가리키고 있었던 곳에, 내가 희망들을 걸었다는 것! 흡사 독일 본질이 제 자신을 막 발견하고 다시 찾은 참이기라도 한 듯, 내가 최근의 독일 음악을 기반으로 하여 “독일 본질”에 관하여 꾸며대기 시작했다는 것—그것도 유럽을 다스리려는 의지, 유럽을 영도할 수 있는 힘을 최근에야 비로소 소유해 보았던 독일 정신이 막 유언을 남기고 최종적으로 퇴위했던 시기12에, 제국-건설이라는 허울좋은 구실하에 평준화·민주정·“현대적 이념”으로 이행했던 시기13에! 사실상, 그동안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주 매정하게 사유하기를 배웠다, 이 “독일 본질”에 관하여, 아울러 철두철미 낭만주의이며 가능한 모든 예술 형식들 중에서 가장 비그리스적인 음악인 지금의 독일 음악에 관하여: 아니, 더 나아가, 일급의 신경파괴자인 그 음악에 관하여, 음주를 사랑하고 불명료함을 유덕으로 존중하는 민족에게는 이중으로 위험한, 즉 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몽롱하게 만드는 마취제의 이중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중으로 위험한 그 음악에 관하여. —물론, 당시 나의 첫 저작을 손상시키고 말았던, 가장 최근의 것에 대한 섣부른 희망들과 잘못된 적용들과는 무관하게, 거기에 찍혀 있는 거대한 디오뉘소스 물음표는 음악과 관련하여 계속적으로 남아 있다: 음악이 낭만주의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라도 하다면, 그것은 어떤 음악이어야 하는가, 독일 음악과 같지 아니하고—디오뉘소스적인 음악과 같은 음악이라면? . . .
7.
—아니, [니체] 씨, 당신의 책이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낭만주의입니까? 그 책이 당신의 아티스트 형이상학 안에서 한 것 이상으로, “지금 시대”, “현실”, “현대 이념들”에 대하여 깊은 증오를 더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형이상학은 “지금”보다는 차라리 허무를, 차라리 악마를 더 믿고 있는데? 귀를 홀리는 당신의 모든 대위성부 기법의 저음부에서 분노와 소멸욕망의 통주저음이 웅장하게 울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노여워하는 결단이, 실천적 허무주의와 그다지 멀지 않는 의지가, “자네들이 정당하느니, 자네들의 진리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참되지 않겠지”라고 말하는 듯하는 의지가! 비관주의자이며 예술을 신성시하는 [니체] 씨, 당신 책에서 어린 귀들과 심장들이 듣기에 휩쓸어버릴 듯 민중을 유혹할 듯 울리고 있는 대목, 저 떠벌렸던 괴물 정벌자들 대목 딱 한 군데만 골라 당신 스스로 귀담아 들어보시오: 어떻습니까? 이것이 1850년의 비관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는, 1830년의 틀림없는 진정한 낭만주의자의 고백이 아닙니까? 그 비관주의 배후에서는 또한 통상적인 낭만주의자의 피날레가 이미 서주부를 타고 있지요, —어느 옛 신앙 앞에서의, 그 옛 신 앞에서의 결렬, 파탄, 복귀, 전락이 . . . 어떻습니까? 당신의 비관주의자 책이야말로 한 편의 반그리스 작품이요 낭만주의 작품, “취하게 만들고 몽롱하게 만드는” 그 무엇, 어쨌든 하나의 마취제, 심지어는 한 편의 음악, 독일 음악이 아닙니까? 자, 사람들이여 들어보시오14:
“무엇에도 놀라지 않는 이 시선으로 어마어마한 것을 향하여 이렇게 영웅적으로 진군하고 있는 성장세대를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이 괴물 정벌자들의 대담한 발걸음, 전적이고도 온전히 “의연하게 살기 위하여”15 낙관주의의 온갖 쇠약한 교리들을 등질 정도의 자긍심을 가진 대범함을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이 문화의 비극적 인간이, 심각함과 공포에 이르도록 자신을 육성할 적에, 하나의 새로운 예술을, 형이상학적 위안의 예술을, 비극을 자신의 [여인] 헬레나로서 욕망하고, 파우스트처럼 외쳐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을까?:
그러면, 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더없는 그리움이 위력을 떨치니,
그 유일무이한 자태를 삶 속에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요?16”
“그것은 필수적이지 않겠느냐고?” . . . 아니다, 세번이나 아니오다! 자네들 젊은 낭만주의자들이여: 그것은 필수적이지 않노라! 그렇게 종결함은, 자네들이 그렇게 종결함은, 그러니까 써 있는 말로 하자면, 심각함과 공포에 이르도록 자신을 육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위안을 받아”, “형이상학적으로 위안을 받아” 종결함은, 한 마디로 낭만주의자들이 그랬듯이 그리스도교인이 되어 종결함은 제법 그럴싸하다만 . . . 아니다! 행여 자네들이 철저히 비관주의자로 남길 원하다면, 자네들은 우선 먼저 이세상의 위안의 예술부터 배워야 한다, —자네들은 웃음부터 배워야 한다, 나의 젊은 벗들이여: 그리하여 자네들은 웃는 자가 되어 언젠가 어느 때인가는 악마에게나 던져주게 되리라, 모든 형이상학적 위안을, —그에 앞서 형이상학까지도! 혹은, 차라투스트라라 이름하는 디오뉘소스적인 괴물의 언어로 말하건대:
“너희 심장을 들어올려라, 나의 형제들이여, 높이, 더 높이! 그리고 다리도 잊지 말라! 너희 다리도 들어올려라, 너희 훌륭한 무용수들이여, 더욱 훌륭하게: 너희 물구나무를 서려무나!
웃는 자의 이 왕관, 이 장미화환의 왕관: 나 스스로 이 왕관을 내게 얹었노라, 나 스스로 나의 웃음을 거룩하다 말하였노라. 이에 필적할 만큼 강한 자 어느 누구도 오늘 나는 찾지 못하였노라.
춤추는 자 차라투스트라, 가벼운 자 차라투스트라, 날개로 신호하는 자, 모든 새들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비상할 준비를 마친 자, 복되어라 마침내 가벼운 자: —
앞서 말하는 자 차라투스트라, 앞서 웃는 자 차라투스트라, 인내를 모르지 아니한 자, 제약을 모르지 아니한 자, 높이뛰기와 넓이뛰기를 사랑하는 자: 나 스스로 이 왕관을 내게 얹었노라!
웃는 자의 이 왕관, 이 장미화환의 왕관: 너희들에게, 나의 형제들이여, 이 왕관을 던지노라! 웃음을 나는 거룩하다 말하였노라: 너희 더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우거라—웃음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 한글맞춤법에서는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유럽언어의 구두점인 콜론(;)과 세미콜론(:)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 큰따옴표는 원문의 것이고, 작은따옴표는 역자가 본문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삽입한 것입니다.
- 원문의 강조문구는 굵은 글씨로 표기하였으며, 대괄호 [ ] 안에 들어가 있는 문구는 의미상 역자가 삽입한 것입니다.
- 원문에는 주석이 없으므로 번역문의 주석은 모두 역자의 것입니다.
- <디오뉘소스적 세계관>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비극의 탄생» 출간 이후 앞 부분을 참고할 것 [↩]
- 그리스인들의 “명랑함”Heiterkeit은 J.J. 빙켈만이 «고대 예술사»(1764)에서 기반을 다진 개념으로서 19세기까지 주요 화두였다. [↩]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스당·메스 전투는 프랑스가 결정적으로 패퇴하게 된 변곡점이었다. 이 스당·메스 전투는 세계전쟁사에서 최초의 추상적 성격을 지닌 전투로도 유명하다. 이 전투에 바로 우리의 니체가 투입되었다. 니체가 이 전투에 자진 참여한 배경과 당대 독일역사에 대한 개괄적 이해는 니체의 정치적 견해, 즉 민주정, 대중화, 평준화 등에 대한 경멸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 도움을 줄 것이다. 스트라스부르, 낭시, 메스는 현재 프랑스 영토로서 알자스-로렌 지방에 속한다. 슈바이처의 고향, 포도주, 알퐁스 도데로 익히 알려진 그 지방이다. 축구 팬들은 안정환이 잠시 활약했던 FC메스 구단을 통해 알고 있는 곳이다. 프랑스쪽에서는 메스라 발음하고 독일쪽에서는 메츠라 발음한다, 스트라스부르와 슈트라스부르크로 달리 부르듯이. [↩]
- 실러, <발렌쉬타인> 48ff. [↩]
- “알려지지 않은 한 신”이라는 표현은 신약성서 사도행전 17장 23절에 나온다. 니체는 사도 바울로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내용을 뒤집고 있다. [↩]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II.35절~46절.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아테네 전몰자 위령제에서 페리클레스가 행한 유명한 연설을 보고하고 있다. [↩]
- <파이드로스>, 244a 이하. 소크라테스의 두번째 연설은 헬라스인들에게 내린 광기의 축복에 관한 것으로서 다른 대화편과는 사뭇 다르게 고양되어 있다. 위대한 광기에는 예언술, 무쉬케, 철학 등이 포함된다. [↩]
- «비극의 탄생» 5절, 24절 참조 [↩]
- 쇼펜하우어, «Parerga» 2편 8장 110절. 여기에서 쇼펜하우어는 반도덕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세계는 단지 물리적인 의미만 있을 뿐 도덕적인 의미가 없다고 함은, 가장 커다란, 가장 부패한, 가장 근본적인 오류로서, [정신]태도의 완연한 도착이다.” [↩]
- 음형의 전개Durchfigurierung는 바로크 음악의 작곡양식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용어이다. 바로 뒤 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통주저음Grundbaß 역시 그렇다. 니체는 이러한 음악용어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빼어난 비유를 달성하고 있다. [↩]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집 3권37장. 니체가 인용하는 페이지는 Julius Frauenstädt가 편집한 쇼펜하우어 전집(Sämtliche Werke, Leipzig)과 일치한다. [↩]
- 아마도 독일 고전주의 문학이 끝난 시기를 겨냥하는 듯하다. [↩]
- 보불전쟁 중인 1871년 파리에 입성한 프로이센군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새로운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제관식을 거행하였다. 여기에서 독일 통일제국이 시작된다. [↩]
- «비극의 탄생» 18절 [↩]
- Goethe, Generabeichte [↩]
- Goethe, Faust II, 7438f. [↩]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잘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문판으로 비극의 탄생을 읽고 있는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은 번역가님께서 번역해주신 한국말 번역판을 참고하며 잘 읽고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희 번역서가 좀 어려운 편이라고 하던데, 독일어나 영어로 함께 읽으시는 분들은 난해한 대목을 이해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마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원문의 의미를 끝까지 탐색하여 옮기려 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느 분들께는 어렵고, 어느 분들께는 니체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장일단이 있는 번역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어느 분야에서나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을 전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