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한 사실정신에서 투명한 고요로움으로—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읽고

풍경을 아예 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의 젊음을 끌고 다녔던 그 뭔가에 이끌려 책만 읽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정점에 다다를 즈음, 일이건 사람이건 풍경이건 모든 것이 눈에 띄지 않고 저의 머리 안의 ‘생각’만이 물질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저에게서 유일하게 무게를 가지고 있던 그 생각마저 해체되는 것이었는데, 그 경험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이글이글 증발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게으름과 공부 등, 모든 구별이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들의 균일함만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세상은 곧 권태로움이었습니다. 신비로왔던 것은 오직 하나, 똥누는 육체였습니다. 민둥산을 헤매는 누추한 머리와 변기통에 앉아 똥누는 육체, 이 둘만 존재하던 때였습니다.

권태로움을 벗어나는 첫걸음 내딛기는 사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그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숲속에 핀 꽃이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주는 일이며 가을날의 단풍이 온 몸을 벌겋게 물들이는 일이며 파아란 하늘이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일을 겪을 줄 몰랐습니다. 사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저는 사람들의 삶을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옆사람의 슬픔과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메아리하는 울림을 듣기 시작하니,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김훈), 상처의 窓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이었습니다.

그 풍경의 언어를 따라가 보니, 참으로 유연하게 곡절(曲折)하며 흐르는 물의 인생이 있는가 하면, 매연으로 칼칼해진 도시의 인생, 얼룩진 고통의 인생, 빛나는 자폐의 이성을 가진 인생도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 인생들을 한 그루 나무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인생길,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그 길은 나무들이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어 마련된 길, 상처와 아픔을 싸안고서 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어 마련된 길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저는 그 오솔길을 걸으면서 사람들 사이를 관통합니다.

“한평생 나그네길 반 고비에”(단테) 사람들의 풍경으로 들어갑니다. 그 풍경이 주는 언어를 깊이 맛보려고 저는 저의 언어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저의 언어를 품고 숲으로 들어가면, 풍경은 보이지 않고 저 하나만 남게 됩니다. 생각을 풀어 보내고 숲으로 들어가면, 풍경이 저를 둘러싸고 있고 저는 감동합니다.

 

우리 사람은 살아갑니다. 대학을 나왔건 초등교육만 받았건 숨쉬고 살아갑니다. 연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밥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죽습니다. 어찌보면 참 간단한 것인데, 그 간단한 것이 전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간단함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삶의 상처들 탓인지도 모릅니다.

종교는 일상의 거절에서 비롯한다. 일상의 삶을 수용할 수 없는 절박한 동기가 없었다면 종교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일상의 수용 불능성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질 수 있다. 고통이라고 해도 좋고, 불운이라고 해도 좋다. 아니면 제법 근엄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의미’라고 해도 좋다. 삶에 왜 즐거움과 기쁨이 없으랴.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러한 것으로 채색되어 끝날 만큼 짧지는 않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는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동기는 삶을 승인하고자 하는 또다른 동기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사람들은 이 계기에서 ‘다름’의 실재를 문화화한다. 신이 등장하고 초월이 실재화한다. 신비가 삶의 꿈을 채우고 신성이 개념화한다. 마침내 우리는 종교라고 말해온 일련의 문화와 만난다. 종교는 이렇게 하여 지금 우리에게 있다. 일상을 거절하여 얻는 비일상의 실재가 곧 종교인 것이다. (정진홍, 『하늘과 순수와 상상』에서)

종교적 경험은 삶이 우그러들어 움푹 패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듯싶습니다. 자신의 삶이 그리 않더라도 옆사람의 삶이 그럼을 주목할 때에도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다. 우리 둘레에는 얼룩진 삶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알지요. 그 얼룩진 삶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는 얼룩진 일상을 떠납니다. 이 떠남을 두고 현실도피라고만 욕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깊이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찾아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여행입니다. 구원의 여정은 우리 인생 끝날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이 여정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치면 언제나 이부자리로 돌아와 눕는 우리네 인생처럼, 돌아갈 자리를 언제나 마음의 지축으로 삼고 뛰쳐나가는 바람쐬기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여정에서 겪은 일들이 아름다웠다면 나그네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데리고 이부자리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아름다움과 틉틉한 이부자리가 함께 있는 일상은 그래서 비일상의 일상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떠난 여인의, 아마도 삶의 얼룩이 참 짙었다싶은 한 여인의,

나는 그분[예수 그리스도]으로부터 배운다. […] 경멸로 일관된 내 삶의 태도를 극복하는 일을 그분으로부터 배운다. 이것을 배우는 일은 현재 내게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을 경멸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으며 나 자신을 경멸해야 될 이유 역시 적지 않다. 삶을 오직 부분적으로만, 그저 한 측면만, 그저 경우에 따라서만 긍정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분은 나를 부끄럽게 하신다. 삶을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긍정하고 초조해하며 단지 부분적으로만, 겉으로만 긍정하려 드는 나의 태도를 낯뜨겁게 하신다. 그리고 아무런 한계도 없이 삶을 혁명적으로 긍정해야 함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빠뜨리는 일 없이 모든 존재를 긍정해야 함을 내게 가르치신다. (도로테 죌레)

는 고백에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일상 안에 가지런히 개켜 두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가 세상을 세례하던 날 풍경을 바라보고서 저는 더러움도 계속되고 씻음도 계속되는 우리네 삶을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는 삶도 되풀이되고 담뱃재 냄새 풍기는 거리의 더러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더러움이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드라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도로테 죌레). 여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구원론」, 「구원의 일상화」를 높이 들어올립니다. 다름과 같음, 씻음과 더러움, 비일상과 일상이 함께 어울리지 아니하면 진정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을 가느라 생긴 여독을 초라하지만 아늑한 집에서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낯선,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이야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 구원의 삶이 신앙 즉 진정한 기적입니다: 공중으로 튀어오른 무용수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과 함께 곧게 서서 걸어가는 듯 보이게 한다는 것, 인생 안에서의 비약을 발걸음으로 바꾼다는 것, 쉽게 말해, 숭고함을 발걸음 속에서 드러낸다는 것—이것만이 기적일 뿐입니다”(키에르케고르, 『공포와 전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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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무심코 들른 미술관이나 성당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얻어맞은 것처럼 발길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한 장의 그림, 한 덩어리의 조각상이,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마력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돌이켜보건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시작이었다.(14)

“짜투리 인간marginal man”(136)인 재일동포의 삶을 살다가 순전히 고국에 대한 그리움 탓에 옥에 같히고 만 ‘죄수’를 두 형으로 둔 서경식은 십수년의 인생을 “엉거주춤”하고 맙니다. 쏟아져 내리는 비에 흙이 깊이 패여 뼈처럼 드러난 흙 속 하얀 돌처럼, 악에 의해 인생이 패여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잔잔한 삶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맙니다.

고통에 더없이 깊이 빠져든 사람들은 먼저 할 말을 잃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곱게 던져주는 위로의 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혼자만이 견뎌내야만 하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에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절망적 상황은, 인간을 눈멀고 귀멀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 위한 감각은 죽어 버리고, 고난은 인간을 소외시키며, 오직 자기 자신과만 관련시킵니다.”(도로테 죌레)

극한 고통은 생명의 뿌리를 빼앗아 인간을 하나의 물건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 고통은 모든 것 앞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고통은 그것을 겪는 이들에게서 개성이라는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물건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통은 무관심한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과 접촉하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그 손길이 닿는 것마다 얼려버리는데, 이는 돌과 같이 차가운 그 무관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따스함을 다시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못할 것입니다.”(시몬느 베이유, 『신을 기다리며』에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최대의 예의는 아마도 침묵일 것입니다.

캄뷰세스 왕의 재판
헤랄드 다비드(Gerard David)의 “캄뷰세스 왕의 재판”

그런 고통,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속수무책의 불행을 엮어내고 마는 그런 삶”(104)에 빠져 들었다 싶은 서경식은, “흐르는 피 한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려는 가열한 사실정신”(7)을 가진 헤랄드 다비드의 그림 「캄뷰세스왕의 재판」을 보고 드디어 침묵을 깨고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순례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해명해 주지 못했고, 그 고통의 상황을 어느 누구도 바꾸지 못했지만, 캄캄하게 헝클어진 삶을 어느 한 올도 남김없이 풀어내려는 “가열한 사실정신” 앞에서 그는 압도되고 맙니다.

‘얽힐 대로 얽힌 삶과 치밀한 사변정신’이 철학이나 신학하는 이들에게 한 쌍의 짝이라면, 서경식으로서는 ‘얽힐대로 얽힌 삶과 치열할대로 치열한 사실정신’이 한 쌍의 짝이었습니다. 그 치밀한 사변정신과 그 치열한 사실정신이 고통을 극복하는데 얼마만한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긴 해도, 저는 그런 정신이 인생 전체를 경멸하고 냉소하는 “물건”으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어떻든 빠져나오게 하는 첫걸음임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말라 비틀어진 생각들과 비척거리는 순례의 발걸음을 보고 그들의 상처를 먼저 주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생각들의 비틀림과 발걸음의 비척임에 더 이상 찡그리는 인상을 보내지 못하게 되며, 괴롭게도, 거꾸로 그 상처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삶의 진실을 배반하는 길, 고통에 빠진 옆사람을 흘기는 눈으로 무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우리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하여!

전문가적 안목으로 또는 귀찮다는 짜증으로, 그들의 생각과 눈길을 무시하고 뭇 고통받는 사람들을 멀찍이 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한 암탉이 상처나면 떼거지로 달려들어 상처난 암탉을 부리로 쪼아대는 암탉들”(시몬느 베이유), 동물들입니다. 사실 이 동물적 본능은, 짐승같게도, 우리네 본능이기도 합니다. 툭 터놓고 말해, 우리 모두가 삶이 비틀어진 사람들을 얼마쯤은 내리깔고 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습성은 고통을 더 이상 화제로 삼길 꺼려하는 마음을 낳고, 결국에는 고통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이 무관심은 고통을 조장하는 이들에 대한 방조이자 고통의 청부입니다. 서경식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그러므로, 그이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상처입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는 그이의 순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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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누이의 초상
레온 보나(Leon Bonnat)의 “화가 누이의 초상”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자그마한 책 앞에는 천연색의 그림 네 점이 실려 있습니다. 헤랄드 다비드 「캄뷰세스왕의 재판」, 고야「모래에 묻히는 개」, 레온 보나 「화가 누이의 초상」, 로베르트 캄핀 「부인상」입니다. 순례지의 결정적인 길목들이라 할 만한 그림들입니다. “마음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 가열한 사실정신”(15)이 충격한 순례는 “그러나 구원 따위는 오지 않는”(고야의 판화제목) 온통 검은 그림으로 채색된 현실 응시로 이어지며, “애를 갖고 싶어…”(30) 나즈막이 말하고서 어두운 일상을 향해, 그러나 “희미한 빛이 비치는 쪽은 향해 걷기 시작하는”(104) 누이의 인생, “영혼의 저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번져”(142)나오는 미세한 파동을 드러내고 있는 「부인상」과 “투명한 고요로움”(15)의 「피에타」로 옮아갑니다. 이 흐름은 상처의 치유 과정이라기보다는 상처가 몰고가는 길입니다. 그 어두운 길 도중에는 “수많은 책형도”, 「반항하는 노예」, 극도로 고독한 고흐의 「거친 하늘과 밭」, 피카소의 「게르니카」, 고야, 벨라스케스,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하는 여인」, 끔찍한 「죽은 연인들」 등이 있습니다.

투명한 고요로움의 여인상을 그린 그림들은, 시간상으로 계산된 순례가 아닌 마음 속 흐름의 순례로 볼 때, 순례 막바지에 있는 그림들입니다. 저는 다시금 여성성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은 여인의 두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습작 “젊은 여인의 두상”

얼마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시회를 보러 갈 때,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인지라 밝음과 활력만 충일한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있었기에 사실 별다른 기대없이 갔습니다. 그러나 인생 내내 기억될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을 포착한 「젊은 여인의 두상」이라는 두 습작을 보고 그 걱정은 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헤랄드 다비드의 「피에타」에 나오는 눈꺼풀을 내린 성모의 얼굴과 맥을 같이 하는 얼굴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얼굴은 유명한 그림 「암굴의 성모」에서 그대로 재현이 되어 있었습니다.

커다란 눈꺼풀은 가만히 내려 앉고, 여린 얼굴 전체에 짙은 슬픔의 빛이 가벼이 물들고, 가슴을 아릿하게 떨게 하는 미소가 입술 위를 흐르고, 한없이 부드러운, 그러나 무한한 고통의 숙명을 내부에 안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이 얼굴을 저는 남자의 얼굴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그 활력과 그 과학적 탐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런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었습니다.

무한한 고통과 무한한 헌신이 함께 있는 그 얼굴은, “대지에는 꽃도 자라지 않고 어린토끼들은 떠나고 말았으며, 새들은 날아가 버려 다시는 보금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자연의 상태”(릴케)에 처해 있으면서도 “마음 속에서 완성된 길”을 걷는 얼굴입니다. “하느님은 축복하는 자를 동시에 저주한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이것은 마리아에 대한 정신적 해석입니다.”(키에르케고르) 그 얼굴에 드러난 여성성은 여성만이 가져야 하는 얼굴이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얼굴입니다. 여성성은 교회의 본질적인 내용입니다. 숱한 상처를 싸안고 헌신으로 다시금 일상 안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그 얼굴은 아마도 로테르트 캄핀의 「부인상」의 얼굴이겠습니다. 이 얼굴은 성녀들을 그린 당대의 그림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젊은 여인의 두상」 두 습작 중 나머지 하나도 바로 이 얼굴과 맥을 같이 합니다. 다 빈치의 명쾌함 안에서도 서경식의 어둠 안에서도, 어느 곳에서나 투명한 고요로움을 자아내는 두 여인의 얼굴—이것만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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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
시몬느 베이유의 사진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라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주목했던 시몬느 베이유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삶과 뜻을 같이 하면서, 서로가 있는 그대로 부대끼며 살다가 그들 속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필연성”을 느끼고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킵니다. 이 필연성은 굳건한 의지에서 나오지 않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을 무로 돌렸을 때, 그리고 그 무로 침투해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은총만이 남아 생동할 때에 압력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압력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참된 자유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고통받는 삶을 주목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였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인간 예수는 그 주목에 걸맞는 삶, 그러니까 고통받는 사람들과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키려는 삶이 접어들어야 할 결정적인 길목에서의 고뇌였습니다. 그 길목에서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운명을 두고 물리적 혁명으로 반항하지 않고 그들의 진정한 운명 즉 고난과 죽음을 같이 합니다. 그분은 신적 권위를 포기하고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아픈 사람들의 운명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들의 운명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치욕입니다. 그 치욕을 부활의 영광으로 읽을 줄 아는 신앙인이야말로 기적의 인간입니다. 이 기적을 일으킨 시몬느 베이유는, 당연히, 서경식의 순례를 미리 앞질러 갔습니다.

1939년 봄이 끝날 무렵 시몬느는 늑막염에 걸렸다. 그녀를 진료해 준 라몽 박사는 시몬느의 병상 곁에 오랫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에서 회복되자 그는 시몬느에게 산간 지방에 가서 요양하기를 권했다. 마침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의 걸작품전을 볼 겸 그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이 걸작품들은 1939년 2월에 스페인에서 소개되어 온 것으로 스페인 전쟁은 4월에 끝났지만 스페인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전시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녀는 7월말께 부모와 함께 제네바로 가서 약 2주일 동안 머물렀다. 매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러 가서 몇 시간이고 서서 감상하곤 했다. (시몬드 뻬뜨르망, 『시몬느 베이유, 그 위대한 사랑』에서)

궁정의 시녀들
벨라스케스(Velazquez)의 “궁정의 시녀들”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자신의 생활을 일치시키느라 철학선생직을 떠나 단순노동의 공장으로, 내전 중의 스페인으로, 고된 노역의 농장으로, 전선투입을 위한 런던으로 쇠약한 몸을 휘몰고 갔던 시몬느 베이유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맙니다. 우연이 아니게도, 그이는 서경식이 그랬던 것처럼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주목했습니다.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병들어 있는 그이가, 인용한 장면처럼 “부조리한 생을 보내 버린 한 사람의 난쟁이의 눈길을 가만히 바라보고”(84) 있습니다. 난쟁이나 광대 따위의 짓눌린 사람들을 “장난감 취급하며 조소하는 자들 쪽의 퇴영, 허식, 광기를 노골적으로 비춰내고”(86) 있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미도 알지 못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서경식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에 들볶이듯 미술관에서 미술관으로, 수도원에서 성당으로, 유럽의 낯선 거리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172)면, 시몬느 베이유는 “나를 고통의 썰물로 만들어 버린, 가이없이 부드러운 사랑”에 떠밀려 가고 있습니다. 파도를 출렁이게 하는 중력처럼, 사랑과 은총이 그이의 삶을 고통의 썰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인생 흐름은 좀 달라도 그 두 사람의 접점은 고통의 흔적, 아니 고통의 실체를 드러내는 그림들입니다. 이 접점, 만나는 자리는 골고다입니다, 두 강도 그리고 그 강도들과 운명이 같은 예수의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는 언덕입니다.

이 치욕의 풍경을 보고 시몬느 베이유는 자기 인생을 그 풍경 속으로 몰고갔습니다: “제가 말하는 피난처는 십자가입니다. 영영 십자가에 동참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도둑의 십자가에라도 동참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옆에서 같이 고난을 겪는 특혜를 누린 그 도둑의 십자가를 선망하는 것입니다.”(『신을 기다리며』에서) 그래서 그이는 결국 치욕스럽게 영양실조로 죽고 맙니다. 그러나 서경식으로서는 그 도둑이 바로 자신의 분신, 자신의 치욕입니다: “그 사나이들은 예수와 함께 골고타 언덕에서 책형을 받은 두 사람의 도적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옥중에서 16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나의 두 형들인 것입니다.”(151)

여인상
로베르트 캄핀의 “여인상”

그 치욕이 영원히 아로새겨 놓은 슬픔을 안고서도 생활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만큼 저는 그 치욕을 겪지 못했기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서경식은 “그 「부인상」에 그려진 여성의 모습을 찾아다니는 일”(149)을 거듭합니다. 한편으로는 상처를 헤집어 내보이는 그리스도상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밤그늘이 지상에 내려오듯 생명력이 훤칠하게 스며든 얼굴을 찾아갑니다. 그 얼굴을 그린 그림을 두고 서경식은 영혼의 기미까지 드러낸 “사실의 극치”라고 평했지만, 실은 반사실의 극치입니다. 다만, 피 한방울도 놓치지 않으려는 치열성과 영혼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포착한 위압적인 붓칼놀림에 대한 상찬을 “사실성”이라고 말해도 좋다면 사실의 극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가열한 사실정신”이 “마음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면, 여인의 얼굴은 반사실적인 기적의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얼굴은 회한의 어머니와 애를 낳고 싶어하는 누이의 얼굴에서 피워올라야 할 희망의 얼굴입니다. 보통은 고통을 먹게 되면, 하임 수띤의 「데셰앙스」(39)에 그려진 여인의 모습, “눈에 하나가득 고여 있는 눈물”과 진흙처럼 이겨진 얼굴과 파리한 몸을 가진 모습을 띠고 있겠습니다. 고통에 빠진 이라면 누구나 걸쳐입을 수밖에 없는 이 모습을 거절하고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생명력 있는 얼굴을 찾아간다는 면에서, 서경식은 순례자, 기적을 꿈꾸는 신앙인입니다.

 

물건의 상태에 접어들어 삶을 절망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해도, 사랑하련다는 꿈마저 접어 버리면 진정으로 물건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기가 아무리 가능하지 않드라도 그래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입니다. 이 신앙은 화석처럼 굳어진 인생 안에 숨을 불어넣는 창조적 사건입니다. 오직 이 사건의 거대한 탄력성 아래에서만, 우리는 고통과 은총의 비밀스런 관계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겠습니다.

은총을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 28)

무한한 고통을 잉태한 무한한 헌신의 마리아에게 천사는 그렇게 알렸습니다. [1998년 글]

수태고지
프라 안젤리꼬(Fra Angelico)의 “수태고지”. 이탈리아 산 마르꼬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가열한 사실정신에서 투명한 고요로움으로—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읽고”에 대한 2개의 댓글

  • 아름다운 서글픔으로 서양미술을 순례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고통과 상처를 응시하는 사실 정신이 고요와 선에 이를 수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강물
  • 이 글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제가 석공 일을 할 때였지요. 참 가파른 시절이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싱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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