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입문기

모차르트 음악은 원하지 않아도 거리에서 상점에서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고유의 욕망을 위해 혹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이 길을 걸어갈 때에도 모차르트 음악은 “들리며”, 필요의 과잉을 좇아 물건을 고를 때에도 그의 음악은 “들리며”, 라디오 소리로 적적함을 달래려 할 때에도 그의 음악은 “들린다”. 도도한 대중의 흐름에 안식하고자 TV를 켤 때에도 들린다. 그렇게 들리는 음악은 내가 뭔가에 집중하고 뭔가를 욕망하고 뭔가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순간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그 뭔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때, 그 끈질기게 길었던 젊은 시절에, 모차르트 음악은 가까이 하고는 싶으나 너무나 벅차고 버거운 것이었으며, “언젠가는 모차르트다” 하는 막연한 암시만이 모차르트에 최고로 접근한 상태였다. 그러나, 머리 속에 들러붙어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벼락처럼 삶의 자리를 이동하였을 때, 나는 그의 음악을 들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때 바흐는 모차르트를 위해 자리를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내 귀에, 내 마음에 착 달라붙기 시작한 최초의 음악은 피아노 소나타였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최고로 여겼던 글렌 굴드의 피아노 소나타. 수백번은 족히 들었을 게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K.310, 이질적이면서도 정열적인 K.330, 장례식에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았던 환타지 K.475 등. 연주자는 달라져갔지만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은 모차르트 전파를 위해 가장 많이 한 선물이었다. 그래도, 모차르트의 가벼움의 무게를 잘 알지 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가까운 이들에게는 요즘도 글렌 굴드를 선물하곤 한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하여 음반 선택을 위한 정보를 많이 습득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음반 정보를 입수하기가 몹시 어려웠으므로, 무작정 음반을 사서 들어보는 과감한 베팅만이 모차르트와 내 숨결을 이어주는 적정한 음반을 찾아내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사족이지만, 어쩌다가 음반 리뷰들을 읽어보아도 거의 혹은 아예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음반을 사서 처음 듣는 순간은 나만 읽을 수 있는 히든 카드를 까는 것과 같았다. 그 시절 최고의 히든 카드는 브루노 발터의 후기교향곡 음반이었다. 다른 외부적인 여건의 영향없이 오직 음악만으로 내게서 눈물을 자아냈던 그 음반에 대한 사랑은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각종 모차르트 음반은 전부 소유하게 된 듯하다. 바륄리 4중주단, 아르투어 쉬나벨도 초창기에 발견하여 여지껏 좋아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다.

초창기를 지난 뒤에 발견하게 된 연주자들은 클리포트 커즌, 로베르 까자드쉬, 탈리히 4중주단, 이탈리아노 4중주단, 릴리 크라우스 등이다. 내가 모차르트 음반을 선별하는 기준 중의 하나는 모차르트의 “가벼움”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가볍게 드러내는 점에서는 쉬나벨, 까자드쉬, 이탈리아노를 향하고, 얼굴 위에 가볍게 드리우는 슬픔을 드러내는 점에서는 발터, 커즌, 크라우스를 향한다.

모차르트의 음악 중에서 오페라는 내가 가장 늦게 다가간 장르이다. 애초에 기악을 무척 선호했던 까닭에 “언어”가 끼어드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첫 시작은 마성에 흠뻑 젖은 <돈 조반니>였다. 아마도 출반된 음반 중 가장 음질이 안 좋을 브루노 발터 지휘의 실황 녹음이었다. 그것도 음반을 구할 수 없어 엠피3로 들었다. 그러나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육체적으로 심장이 아플 정도였고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한 마디로 무서웠다. 그래도 간혹 인간 격정이 아쉬울 때면, 요즘도 음질이 좋은 음반들을 모두 제껴 두고 두려운 마음으로 발터의 <돈 조반니>를 듣는다. 그 뒤를 이어서 들은 <피가로의 결혼>이나 <코지 판 투테>는 모차르트의 인생 활극을 마음껏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랑, 유희, 마성이 그토록 발랄하고 서늘하게 얽힐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이 오페라들은 무수한 인간 희비극과 심오한 철학을 머금고 있으며, 내 영혼을 도려낼 정도로 인간의 인간성을 섬뜩하게 파헤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클라라 하스킬, 칼 뵘, 아르튀르 그뤼미오, 아르농쿠르, 알반 베르크 4중주단 등은 유감스럽게도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그분들이 추구하는 것에 내 함량이 미달하기 때문이리라.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파격이거나 너무 화려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모차르트를 편식한다는 주위의 우려를 덜어주려고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도 들어보려고 몇번 시도해 보았지만 언제나 실패했듯, 그분들의 연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연주자들과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쉬운 일이다. 동호회 같은 데에서 확인해 보면, 나와 정반대로 나아가는 분들도 있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위대하고 나는 왜소한 것이다.

늦은밤에는 주로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이중주,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다. 그러나, 아침에는 소규모 관현악, 아리아, 가곡 등을, 홀로 마음껏 집중하여 들을 수 있는 황금의 시간대에는 교향곡, 오페라, 피아노 협주곡, 미사곡 등을 듣는다. 모차르트에 대해 언제쯤이면 질리게 될까. 아마 평생 그런 때가 못올 것같다는 확신이 든다. 행복한 확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내게 가장 미진한 분야는 오페라인데, 초기 오페라들과 오페라 세리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좀더 탄탄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오페라 음반들만큼은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분명한 호오를 변별하기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결론은 또 베팅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누가 대신 베팅해서 결과를 알려 줄 수는 없을까.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므로. 그러나, 내 인생과 비슷한 인생을 만날 수는 있으리라. 그렇게라도 되면 나는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그 사람이 공개한 리스트를 죽 따라 음반을 구입하고 싶은데, 그 만남은 한사코 유예된다. 기다림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도박은 기다린 만남을 앞당긴다. 베팅은 푸른 빛 감도는 유혹이다. 고마워라, 아직까지도 날 유혹하는 존재가 있다니!

모차르트 입문기”에 대한 4개의 댓글

  • 이 글을 쓴 지도 어언 5년 가량 지났군요. 이제는 클라라 하스킬, 칼 뵘의 연주도 잘 들립니다. 특히 클라라 하스킬 연주, 참 좋네요. 역시 이분들의 연주가 잘 안들렸던 시절, 이분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러나, 아르농쿠르와 알반베르크 4중주단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군요.

    고싱가숲
  • 모차르트에 이제 막 미친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모차르트를 들으면 들을 수록 다른 클래식 음악들이 듣기 불편해 집니다. 또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을 꼭 님처럼 좋아합니다. 저도 오페라는 아직 입니다. 이채훈 pd님 방송 듣다가 알게되었습니다. 모차르트 음원 너무 잘 듣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쾨헬번호 찾아 삼만리 였는데 훌륭한 음반 듣기 쉽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정정안려득
  • 모차르트 레코드사별 전집 희귀음반 모차르트 일생에 만난 음악가들의 곡들 찾아 30년동안 듣고 있네요..
    아리아, 종교음악 실내악 유명하지 않는 곡들이 아주 익숙하게 들리면 자연스럽게 마스터하게 되는 단계로 올라가게 됩니다…

    지나가는이
  • 대단하십니다, “모차르트 일생에 만난 음악가들의 곡들을 찾아” 수십 년 동안 들으셨군요!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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