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작정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실천에 옮겼다. 책읽기를 상당히 게을리하는 편인지라 앞으로 얼마나 더 읽어볼 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계속 읽어야 하는 소설가임을 확인했다. 처음 읽은 그의 소설 <죽은자The Dead>의 마지막 본문을 소개하고 싶다.
어깨가 시릴 정도로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웠다. 그는 이불 속으로 조심스럽게 따라들어가 몸을 누였다. 아내 옆에 누웠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은 모두 그늘이 되어갔다. 늙어서 암담하게 시들다가 사라지느니 차라리 뭔가 격정의 광휘로 가득할 때 용기를 가지고 저 다른 세상으로 가거라. 그는 생각했다, 아내의 연인이 아내에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의 그 연인의 눈의 이미지를 옆에 누워 있는 아내는 그토록 오랜 세월 어떻게 마음속에 감춰두고 있었을까?
가브리엘의 눈은 동정의 눈물로 가득했다. 그 자신은 어느 여인에게도 그렇게 다가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지만 그런 감정이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희미한 어둠속, 상상 속에서 그는 한 청년이 빗방울 후두둑 떨어지는 한 그루 나무 아래 서 있는 형상을 보았다. 다른 형상들도 근처에 있었다. 그의 영혼은 수많은 죽은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토로 다가갔다. 그는 그들의 종잡을 수 없이 가물거리는 실존을 의식하긴 했으나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는 감촉이 불가능한 잿빛 세계를 향해 꺼져들고 있었다. 죽은자들이 한때 세우고서 살았던 곳, 고체처럼 단단한 세계마저 녹아버리더니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유리창을 토독 토독 치는 소리에 그는 창문을 향했다.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잠결 속에 눈송이를 지켜보았다. 은빛과 어둠. 가로등불을 향해 살몃살몃 떨어지는 눈송이. 그가 서쪽 여행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다, 신문 기사대로 아일랜드 전역에 눈이 내렸다. 눈은 캄캄한 중부 평원 곳곳에, 나무 한 그루 없는 언덕들에 내리고 있었으며, 알렌의 늪에 사뿐히 내리고 있었으며, 서쪽 먼 곳, 샤논 강의 거침없는 검은 물결 속으로 사뿐히 내리고 있었다. 마이클 퓨리가 묻힌 쓸쓸한 언덕 묘지에도 구석구석 내리고 있었다. 갈고리 십자가들과 묘비들 위로, 작은문 창살들 위로, 황폐한 가시들 위로 나리어 두툼하게 쌓였다. 그는 우주 전체에 아스라히 눈이 내리는 소리, 마치 그들의 종말이 하강하듯, 산자와 죽은자 모두에게 아스라히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의 영혼은 스르르 혼절하였다.
The air of the room chilled his shoulders. He stretched himself cautiously along under the sheets and lay down beside his wife. One by one, they were all becoming shades. Better pass boldly into that other world, in the full glory of some passion, than fade and wither dismally with age. He thought of how she who lay beside him had locked in her heart for so many years that image of her lover’s eyes when he had told her that he did not wish to live.
Generous tears filled Gabriel’s eyes. He had never felt like that himself towards any woman, but he knew that such a feeling must be love. The tears gathered more thickly in his eyes and in the partial darkness he imagined he saw the form of a young man standing under a dripping tree. Other forms were near. His soul had approached that region where dwell the vast hosts of the dead. He was conscious of, but could not apprehend, their wayward and flickering existence. His own identity was fading out into a grey impalpable world: the solid world itself, which these dead had one time reared and lived in, was dissolving and dwindling.
A few light taps upon the pane made him turn to the window. It had begun to snow again. He watched sleepily the flakes, silver and dark, falling obliquely against the lamplight. The time had come for him to set out on his journey westward. Yes, the newspapers were right: snow was general all over Ireland. It was falling on every part of the dark central plain, on the treeless hills, falling softly upon the Bog of Allen and, farther westward, softly falling into the dark mutinous Shannon waves. It was falling, too, upon every part of the lonely churchyard on the hill where Michael Furey lay buried. It lay thickly drifted on the crooked crosses and headstones, on the spears of the little gate, on the barren thorns. His soul swooned slowly as he heard the snow falling faintly through the universe and faintly falling, like the descent of their last end, upon all the living and the dead.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원문은 The Literature Network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왜 조이스의 소설을 이제야 읽은 것일까? 이렇게 늦게 만나는 것도 인연인데 마음 조급해 할 것은 없을 듯하다.
몇일 전, 작년 이맘 때쯤 읽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이 떠올랐습니다. 1호선 지하철 안에서 잠자리 자장가처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목소리를 통해서 몇 구절 들은 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인 벨프의 중 를 조수미 버전으로 구해서 들으며 얼마나 밤새 울었었는지 모릅니다. 딸과 함께 부르기도 하고, 아들에게도 들려 주었지요. 전 그렇게 제임스 조이스를 처음 만났고 그의 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손에 들고 이 겨울을 함께 보내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늦은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날 때가 되어 만난 것이겠지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문을 고싱가님이 번역하신 거죠? ‘토독 토독’, ‘살몃 살몃’… 인용하신 부분을 두어 차례 다시 읽으면서 딸 아이에게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원문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언젠가 함께 부르던 노래를 기억할 수 있겠죠? 어리지만 그렇게 함께 지난 힘겨운, 그러나 행복한 시간들을 이해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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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대목은 한번 씩 번역해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번역해 보면 낱말의 미묘한 뜻들을 전부 살펴보는 계기가 되니까요. 외국어뿐만 아니라 우리말도 배우는 계기도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의 심층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고요.
제임스 조이스의 [진흙]입니다. 여주인공 마리아가 불렀던 것은 벨프의 [보헤미안 소녀] 중에서 [Marble Halls]란 노래이고요. [진흙]을 읽고 [더블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