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저 멀리서 도량을 푸는 목탁소리가 똑똑똑똑똑똑똑 들리면서 깨어나는 하루는 정결하다. 하고 싶은 마음, 하기 싫은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면, 몸이 피곤하더라도 이른 새벽 일어나는 일은 가볍다. 어둠을 사르는 별빛 우러를 때 온몸이 이미 씻긴 듯하다.
절집의 대중들이 손과 얼굴을 씻고 금당으로 오르는 사이 도량석은 잦아들고 금당 안에서는 어느 한 스님의 종송이 흘러나온다. 작은종을 치며 하는 종송은 적막을 조용히 두드리면서 하루를 느짖이 건드린다. 이제, 법고사물과 함께 모든 생명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절집의 대중들은 법당 안에 소리없이 모여들어 삼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는다. 법고사물의 소리가 끝나면 법당에서 그 소리를 이어받아 새벽예불이 시작된다. 만물과 함께 일어서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불원천리 마다않고 서울에서 남도로 내려가 절집에 묵을 때마다, 새벽예불은 늘 금강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아름다움. 그저 이 순간의 정결함으로 이 생애를 주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비원과, 그 비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비감과, 그 비원과 그 비감마저도 씻겨내면서 엎드려 절하는 순간의 새벽예불. 그것은 비원과 비감을 동시에 깨뜨리는 진정 강한 아름다움이었다.
<승보의 울림>은 송광사의 새벽예불을 녹음한 것으로, 천수경과 금강경의 합송이 포함되어 있다.
송광사의 새벽예불을 녹음한 <승보의 울림>을 구하여 듣고보니 그 금강같은 아름다움이 새삼스럽게 그립다. 이전에 구했던 <空—소리로 떠나는 그곳, 山寺>는 송광사·해인사·운문사의 예불을 모아놓은 것이었고 기술적으로 녹음상태가 더 우수하지만, 아쉽게도 새벽예불이 아니었던데다가 천수경 독송이 중간에 생략되어 있었다. <승보의 울림>은 도량석과 범종소리만 짧게 녹음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과정이 모두 녹음되어 있고 무엇보다 새벽예불을 녹음한 것이다. 녹음 내용은 이렇다:
도량석(1:14)
종송(2:30)
불전사물(12:52)
예불(13:01)
발원문(6:01)
반야심경(3:03)
천수경(9:53)
금강경(23:35)
해인사에 비하면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매우 느리고 패기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 정도의 템포와 나지막함이 좋다. 고요히 엎드렸다 장중하게 아뢰는 분위기에서 결코 쉽게 나서거나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유장한 호흡이 느껴진다. 혹은 천지를 깨움이 미안한 듯 혹은 도반들의 호흡을 앞질러감을 저어하듯, 소리는 낮고 느리다. 그들의 호흡은 모나지 않고 둥글고 낮다.
울림이 커지고 템포를 올리는 것은 천수경에 이르러서이다. 대중스님들이 일제히 합송하는 천수경과 금강경은 그 내용을 떠나서 음악적으로도 감동적이다. 나는 이 음반에서 금강경 합송을 처음 접했거니와 금강경 합송이 가능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녹음이 비교적 가까이에서 이루어져 종소리가 웅웅거림이 없지 않으나 충분히 용인할 만하다. 지심귀명례같은 경우는 멀리서 예불소리가 장엄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 옆에서 새벽예불에 동참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스님들이 엎드려 절하는 호흡마저 감지될 정도이다. 도량석이 길게 녹음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70분 분량에 금강경 합송까지 담기 위해서 짧게 생략된 셈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겠다. 사실 가장 아쉬운 점은, <승보의 울림>이 거의 모든 온라인 매장에서 품절되었거나 아예 판매되지 않고 있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이 음반을 들으며 묵언으로 별이 빛나는 새벽을 가르며 법당을 오르는 수많은 수행자들을 생각하리라. 금강같은 아름다움과 슬픔을 느껴보리라.
모나지 않고 둥글고 낮은 호흡을 생각합니다 자연은 더할 것고 뺄 것도 없는데 인위를 가하려는 마음은 슬며시 생기고…. 참, 기쁜 소식 전합니다. 동백이 잘 자라다가 봄에 빈사상태에 이르렀지요. 누가 홍삼즙을 주면 잘 자란다 하기에 그걸 주었는데 말입니다. 뿌리는 살아 잇어서 물을 주고 바라보고 다만 기다렸지요 .지금 곁가지가 밑둥에서 뻗어나와 낮고 풍성하고 안정감 있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냥 괜히 좋아지네요.선생님 댁에 바라던 일들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감사합니다^^ 그 동백이 그렇게 오랫동안 뿌리를 내릴 줄 예상 못했는데요. 다행한 일입니다. 식물도 토양이 바뀌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고들 하던데, 선생님 댁에 이제 적응이 되었나 보네요. 문득, 근원 선생이 감나무 살리느라 물 동이를 사다가 수일간 부어주었던 일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