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스님에 관한 일화는 어지간히 알고 있는 편인데, 석명정 스님의 «茶이야기 禪이야기»를 읽다가 새로운 일화를 접하게 되었다. 가령 월남 망국사 강의 도중 울음을 터뜨리신 것이라든가 경봉 스님이 심우장을 들렀을 때 찬 없는 밥을 대접했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 이에 기록해 둔다:
경봉 스님께서는 22세 때 통도사 강원에서 화엄을 수학하셨는데 여기서 한용운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시자 때 스님은 종종 한용운 스님 얘기를 들려 주셨다.
한번은 만해 화상께서 ‘월남 망국사’를 강의하다가 도중에 울음을 터뜨리시더란다. 월남과 우리나라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던 것이다.
그 뒤 시베리아 여행 도중 첩자로 오인을 받고 머리에 총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머리를 흔들어대 사진찍기가 어려웠던 이야기며, 심우장에 칩거하실 때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은 사연, 구하九河 노사님과 함께 심우장을 가끔 방문하면 찬이 없는 밥을 대접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내가 지금이라도 한생각 고쳐 먹으면 대접을 잘 할 수 있는데…”라는 농담을 하시던 일 등등.
시자 때 그런 이야기를 듣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이 너무나 무상하여 반세기 가까이나 흘러버렸다.
— 석명정, «茶이야기 禪이야기» 176면
한용운의 대표적인 초상은 고개가 갸웃한 채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머리에 총을 맞은 후유증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내가 지금이라도 한생각 고쳐 먹으면 대접을 잘 할 수 있는데…”라는 농담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당시 총독부가 거금을 주어 한용운을 매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 생각 고쳐 먹으면 평생을 편히 먹고 살 수 있지만, 그 한 생각에 일생을 걸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위인들을 다시 되돌아본다.
누군들 집에 찾아오는 손에게 찬 없는 밥을 대접하고 싶겠는가! 강직하게 살면 때로 가장 일상적인 부분에서 가장 커다란 부끄러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