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사진가들의 작품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배병우, 김중만, 구본창 등의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작품과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정신적 이력 때문일 것이다. 애시당초 내가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것은 서양 인문학, 서양의 예술, 아니 서양의 정신세계 전반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품기 시작한 뒤였다. 물론 고대 그리스 세계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서양 정신세계가 내게서 무너진 뒤에 찾고 싶은 서양의 바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스 여행을 카메라 없이 다녀온 나는, 다음 두 번째 여행 때는 그리스 유적지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서른 중반에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쥔 것이다. 그리고 연습삼아, 순전히 그리스 유적지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예비단계로, 우리나라 유적지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유적지 답사와 사진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질 줄은 몰랐거니와 또 이렇게까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될 줄도 몰랐다.
디지털카메라 1년, 필름카메라 2년, 이것이 내 사진 경력의 전부다. 그렇지만 사진에 접근하는 자세는 수시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정태적인 구도와 조형성, 빛의 콘트라스트, 다음으로는 색채의 화려함 등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한갓 나의 과거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요소들에 도취되었을 때 숨막히는 촬영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사진들은 어쩐지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역시 정신성이다. 자신의 정신성이 없는 이상 조형과 색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나는 그 사진에 대하여 실망한다. 물론 어쩌다 운좋게 좋은 사진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사진이 꾸준히 배출될 수는 없다. 이러한 자각이 있은 뒤부터 나는 다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열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양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정말 찾기 어려웠다. 내가 서양적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아니 천만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세계, 그들의 세계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들 중 서양미학에 물든 사진들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구본창, 김중만 등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배병우의 사진이 한국적이라고들 하지만, 피사체만 한국적일 뿐 그 정신적 내용은 결코 한국적이지 않다. 물론 «종묘» 사진집은 독보적으로 뛰어나지만, 그것은 철저한 계산과 기다림의 산물일 뿐 그의 한국적 정신세계의 산물로 보기는 힘들다. 그의 사진들이 비한국적이라는 사실은 그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해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대하여 많은 실망감을 안고 있다. 물론 그의 사진들은 멋지고 근사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의 사진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줄 수 있는 충격과 쾌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갑철의 사진은 다르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 때로는 그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내가 찍어놓은 사진과 너무나 흡사한 그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에는 굉장히 뼈아픈 느낌을 가졌다. 내가 앞으로 발견하게 될 세계를 혹시 그가 이미 먼저 발견하고 만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뛰어난 예술가는 그가 속한 세계를 남김없이 드러내어 일말의 가능성마저 소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혹시 이갑철이 그러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정도로 나는 이갑철의 사진이 좋고 그가 앞으로 쏟아낼 작품들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예술가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기쁘다. 그리고 그가 사진을 대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라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도 어디론가 떠난다. 어느 장소 어느 순간을 만날 듯한 느낌, 그 조그만 예감과 희망을 품고. ‘이런 계절, 이런 날씨와 분위기에는 그 장소에 가면 내가 찾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아래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것이다.
반드시 그 순간을 만나지 않아도 좋다. 이 땅의 냄새를 맡고 우리 땅 구석구석에 어려 있는 기를 느끼고 받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더없이 큰 보람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고행하듯 찾아다니며 만난 대상들에게서 번져 나오는 내음과 전율로 가득할 때···. 내적 충만감과 폭발, 그 무의식의 순간에 사진이 나온다고 믿는다.”
— 이미지프레스가 펴낸 «여행하는 나무»(청어람미디어, 2005년), <가슴 시린, 나의 풍경>(이갑철)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에 계산하고 찍는 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이지요. 무의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내면이 꽉 차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촬영하러 다니면서 꼭 사진이 안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돌아다니면서 받는 느낌만 가슴에 담아두어도 좋으니까요.”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입니다. 사진은 내가 사는 한 방법일 뿐이에요.”
“사진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느끼니까 사진을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평생 사진을 하게 될지 나도 답할 수 없어요. 사진보다 더 기쁨을 주는 게 있다면 그걸 하게 될 테니까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이죠. 그 다음에는 자기 색깔을 심화시키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런데 ‘심화’라는 것이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나오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먼저 자기 자신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 이상은 «월간사진세계»(2005년 12월호)에서
이갑철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린 계기는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충돌과 반동>(2002년)이었다. 그는 이 전시회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이 “전시를 하는 목적은 한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한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서”라고 고백했다. 나는 이 고백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가 본, 그가 겪은, 아니 그를 엄습한 “한국적인 것”이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한 세계인데, 아무도 그 세계를 드러낸 작가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일단 예술가로서 성공할 필요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 세계를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 세계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처음으로 드러낼 수 있겠다는) 기쁨보다는 분노의 감정, 배반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읊어대고 있지만, 누구도 한국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책임”이라는, 상당히 비예술가적인 표현인 듯하지만 실은 진정으로 예술가적인 표현을 뱉았을 것이다.
내가 이갑철의 사진을 처음 접한 것도 이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작품이었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가서 본 것이 아니라(이때만 해도 나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훗날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하여 상설전시하고 있던 작품 서너 점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위의 사진이다.) 첫 인상은, 내 가슴을 패는 듯한 충격의 느낌이었다. 불안한 사선, 28mm 렌즈의 팍팍하고 긴장된 앵글, 거친 입자의 생명성, 몽환적인 흔들림, 무자비한 화면절단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은,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서도 맛볼 수 없었던 거친 생명력, 두려움, 주술성을 선사하였다. 그 작품들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이갑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행여 잊을까봐 몇번이나 머리속으로 되뇌었다.
<충돌과 반동> 이후 몇달 뒤 2002년 같은 해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이갑철 사진전>이 열렸다. 이 작품들은 <충돌과 반동> 전시작과 동일하게 28mm 단렌즈, Tri-X 400 필름을 고집스럽게 사용한 것이다. 두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분류만 달리한 듯하다. 그만큼 두 전시회의 사진들은 동일한 정신세계를 표방하고 있다.
금호미술관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충돌과 반동»(다른세상, 2002)이라는 작품집으로 출간되었지만 일찌기 품절되었다. 작년엔가 출판사에 전화해 보았더니, 이미 절판시켰으며 더 이상 출판 계획이 없다고 했다. 아마 출판사의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2004년 말에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CAMERA WORK 시리즈의 첫 작품집으로 «이갑철»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은 <충돌과 반동>뿐만 아니라 <이갑철 사진전>에 전시되었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시중 서점에서는 구입이 불가능하여 나는 이 작품집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한미문화예술재단의 한미사진미술관을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이갑철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후 그에 관한 작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충돌과 반동>, <이갑철 사진전> 전시작 이외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허균이 글을 쓰고 이갑철이 사진을 찍은 «한국의 정원»(다른세상, 2002년)을 구입하면 된다. 책의 내용은 자료적인 성격의 평범한 글로 채워져 있지만, 이갑철의 사진이 이 평범한 글이 절대 담아낼 수 없는 한국적 정신세계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유적지 풍경을 담은 여타 사진가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몹시 지치고 말았던 나는,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고서 비로소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한국의 정원»에 실린 사진들은, <충돌과 반동>에서 그토록 충격적인 작품들을 내걸었던 이갑철이 고요하고 청한한 세계 역시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증거한다. 물론, 그 고요하고 청한한 세계에서도 꿈틀거리는 역동성은 여전하다. 예컨대, <농월정>이나 <정여창 고택> 사진, <죽서루> 편에 실린 괴석 사진, 물을 끌어들이는 홈통을 앞으로 확 잡아당기고 광풍각을 저 멀리 꿈결처럼 처리한 <소쇄원> 사진(뒷표지), <서석지>의 은행나무 사진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 문화유적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이 책에 실린 이갑철의 사진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은 이갑철의 사진을 가장 많이 감상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갑철은 <충돌과 반동>, <이갑철 사진전>이 열렸던 2002년 이후로는 개인전시회를 갖지 않았으므로, 현재 그의 최근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경로는 드물다.
대한항공의 기내에 비치하는 월간지 «Morning Calm»에 프리랜서로 기고하는 작품이 있기도 하고, 정동주의 «불교의 향기, 그 다섯 아름다움»(다른세상, 2005)과 앞서 인용문에서 언급한 «여행하는 나무»(청어람미디어, 2005년)에 몇 점 실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05 제6회 이명동 사진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월간사진예술»(2005년 12월호)에 게재된 2004년도 겨울풍경 사진 몇 점이 있다. 이 매체들이 이갑철의 최근 사진을 접할 수 있는 곳들이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현재 작업 중인 그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숨길 수 없다. 이삼 년 내에 관련 전시회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는 겨울풍경의 진면목을 알고 있으므로 다가오는 겨울철 한 판 더 찍고 나서 내년 봄께 전시회를 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의 전시회가 열리면 나는 그의 작품들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검색을 하면서, 그가 2005년에 프랑스 ‘뷰(Vu) 에이전시’의 소속작가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알아본 프랑스인들이 새삼 놀랍다. 나는 이갑철의 사진을 보면서 과연 서구인들이 이 사진세계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가장 한국적이니까 가장 덜 서구적이고, 그러므로 서구인들이 이를 알아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이를 알아본 서구인들이 있단다. 그들의 안목에 찬사를 보낸다.
이갑철, 그는 화려한 학력도, 외국 유학 경력도, 그럴듯한 사회적인 지위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1990년 이후 15년 동안 인쇄매체에 그의 사진을 제공하는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살아왔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사진가이다. 아마 이 땅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았을 생활 속에서도 지치거나 흔들림 없이 치열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이갑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충실하며 걸어온 사진가의 길이 어느새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가로, 어느 누구의 사진과도 닮지 않은 이갑철다운 사진으로 세계를 향하게 하고 있다.
— 윤세영, «월간사진예술»(2005년 12월호)에서
당연히 이갑철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내 짐작에는, 이갑철이 서구 미학에 경도되지 아니한 작가인 탓에 그의 작품에 대한 사진비평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허다한 비평가들은 어줍잖은 서구 미학이론을 토대로 비평하기 일쑤인데, 이갑철의 사진은 그런 미학이론에 포섭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의 미학이론에 익숙한 학자가 조선의 회화를 평해야 할 때 부딪히는 당혹스러움과도 같다. 비평가의 성숙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갑철과 같은 예술가가 여럿 탄생해야 한다. 비평가가 위대한 예술가를 낳을 수는 없는 반면에, 예술가는 위대한 비평가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산이 많은 콜렉터라면 이갑철 사진을 구입할 것이다. 작품감상도 감상이려니와, 이것은 확실한 투자로서 언젠가는 분명히 많은 이익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사십대 후반의 이갑철은 윤세영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정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현재 정점에 오른 감각으로 우리나라 산야를 헤매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그 누구도 드러내지 못했던 독보적인 한국적 풍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사이트 안내
- <충돌과 반동>과 <이갑철 사진전> 전시소개와 전시작 감상
- <충돌과 반동>(금호갤러리, 2002년)의 전시작 대부분과 <이갑철 사진전>(한미사진미술관, 2002년) 전시작 다섯 점을 작은 크기로 감상할 수 있다. 두 전시회의 소개문도 읽어볼 수 있다. 포테이토닷컴 웹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갤러리이다.
- 한미사진미술관의 <이갑철 사진전> 전시소개와 전시작 감상
- <이갑철 사진전>의 전시회 소개문(박영숙)을 읽어볼 수 있으며, 작품 네 점을 감상할 수 있다. 한미사진미술관 홈페이지의 지난전시 소개란이다.
- <충돌과 반동>과 <이갑철 사진전> 전시작 감상
- 두 전시회의 전시작 대부분을 중간 크기로 감상할 수 있다. ZOOMIN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갤러리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출간한 이갑철 사진집 소개
- 포테이토닷컴 웹진의 단신 기사로,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CAMERA WORK 시리즈로 첫 출간한 이갑철 사진집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찔레꽃 아래 흰 망사수건을 쓴 할머니’ 표지사진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집을 구입하려면 한미문화예술재단을 직접 방문하거나 (02)418-1315로 연락해야 한다.
- 제6회 이명동 사진상 수상자 “이갑철”
- «월간사진예술»(2005년 12월호)이 이갑철의 <제6회 이명동 사진상> 수상을 기념하여 작성한 기사. 이 잡지의 편집장인 윤세영이 쓴 것으로서 이갑철의 발언들이 인용되어 있고, <충돌과 반동> 전시작과 2004년 겨울풍경 사진들이 실려 있다. 아울러 이갑철을 가르쳤던 육명심의 심사평 “사진을 통한 자아의 발견”도 읽어볼 수 있다. 육명심의 심사평에서 우리는 이갑철이 대결했던 사진가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이갑철 사진세계의 이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 «여행하는 나무» 미리보기
- 온라인서점 YES24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 기능을 통하여 이갑철의 겨울풍경사진 몇 점을 볼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여행하는 나무»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Morning Calm» 웹진의 국내여행기사
- 대한항공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Morning Calm»의 국내여행기사란에서 이갑철 사진을 살필 수 있다. 이 난의 기사들 중에서 직지사, 대전사, 신흥사, 낙안읍성, 오대산의 봄 관련 기사에 이갑철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충돌과 반동> 관련 이갑철 인터뷰
- <충돌과 반동> 전시회장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 KBS 디지털미술관 다시보기
- 이갑철의 2003년도 동강사진대상 수상을 즈음하여 이갑철을 취재한 것이다. 2003년 8월에 방영되었다. 이갑철의 일상과 촬영여행을 살펴볼 수 있다.
이갑철 사진에 대한 수려하고 예민한 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 또한 파리에서 3년여를 살아가며 프랑스인들의 안목에는 공감하는 면이 많습니다. 핏속에 흐르는 예술성을 무시하기 힘들지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음성이 있고 그 음성을 듣고 또 우리는 반응합니다.
내는 소리, 들어야 하는 소리, 모든 울림의 복합체까지,
28미리와 tri-x 400으로 멋지게 담게 되시길 희망합니다.
작년엔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이갑철 사진전이 열렸죠. <氣 ENERGY> 였던가 그랬는데, <충돌과 반동> 때의 강렬함이 좀 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한 (흰색이 너무 흰) 디지털인화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약간은 작위성이랄까 아니면 확신이 과다할 때 드러나는 허위성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술가가 자기 관념에 지배당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사진은 좋았던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