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은, 마치 분출하듯이, 실로 선명하게 마음속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가는 내게 분명하지 않으며, 나 역시 그것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합니다. 연달아, 이러저런 구상이, 대위법과 각양 악기의 음색에 맞추어 나를 쫓아옵니다. 꼭 파이를 만드는데 필요할 만큼의 조각이 필요한 식입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은, 별도의 방해가 없는 한, 내 영혼을 흥분시킵니다. 그러면, 그것은 점점 커지고, 나는 그것을 더욱 넓게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전개시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가령 아무리 긴 것일지라도, 내 머리속에서 실제로 거의 완성됩니다. 나는,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보는 듯이, 마음속에서, 한눈에 그것을 봅니다. 그 뒤에는 물론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 나타납니다만,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 나타나지는 않고 마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리는 것입니다. 굉장한 성찬이지요. 아름다운 꿈속에서 본 듯이, 모든 것의 발견과 구성이,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완성되고 나면, 내가 쉽게 잊질 못한다는 것마저 하느님께서 내게 선사한 최상의 재능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뒤 쓸 단계가 되면, 두뇌의 보따리 속에서, 방금 말씀드린 대로 해서 수집한 것을 꺼내기만 할 뿐입니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고 쓰며, 또 쓰면서, 어떻게 해서, 내가 하는 것이 모두 모차르트다운 형식과 수법을 따르고, 타인의 수법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것은, 내 코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크게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 코가 확실히 모차르트 풍이고 타인의 풍은 아닐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지요. 내가 유별나게 타인과 다른 것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1
얀2이 보증하고 있는 이 유명한 편지는, 모차르트가 천재임을 보여주는 낙인으로서, 허다한 평자의 손으로 인용되었다. 확실히 이유 없는 것은 없다. 어떤 음악의 천재도, 이런 정도의 놀랄 만한 경험을 말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음악의 천재도, 스스로 가장 중요한 사정에 관하여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말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니, 어느 쪽일까 말하자면, 나는 음악비평가들 중에서 [그런 면을] 주의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쪽 분들에게 흥미를 잃는다. “구상이 분출하듯이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토록 짧은 생애에, 그런 정도의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듯싶고, 메모도 없으면서 변형도 없고, 수정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원보는, 그가 가축이나 닭과 이야기를 하면서 썼음을 증명하고 있다. 편지에서 말하고 있는 사실은 아마도 조금도 과장된 것은 아니리라. 무엇이든 그대로였을 것이지만, 아무튼 손을 댄 듯하지는 않다. 말하자면, 정신생리학적 기적으로서 영구히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을 말하는 모차르트의 어린아이다움이라는 것에 이르면, 어린아이다움이라는 말의 의미의 깊이에 응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여지가 있을 듯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의외로 머나먼 곳까지, 나를 이끌고 갈 듯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 고바야시는 위 인용문을 모차르트의 편지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근거는 오토 얀Otto Jahn의 전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 결과는, 위 인용문이 모차르트의 편지가 아니라 메모라고 보는 듯하다. 필립 솔레르스, 김남주 역, <모차르트 평전>, 70~73면을 보면, 위 모차르트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모차르트 평전>에 의하면, 1956년 하이데거가 <이성의 원칙> 제9장 “자연 본성으로부터 순수 이성에로”에서 위 인용문을 인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저서나 강의 제목에 <이성의 원칙>이라는 제목은 없다. 아마도 하이데거가 1956년 겨울학기에 강의한 <근거에 관한 명제>(혹은 <근거율>)라는 제목을 중역하다 보니까 오역한 듯하다.
나는 하이데거의 강의 <근거에 관한 명제>를 실마리로 하여 위 모차르트의 글의 출처 및 비평사를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고바야시의 글마저 등한시하고 말았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확인한 결과를 우선 밝혀두고, 후일에 확인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모차르트 글의 원문을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고바야시가 인용한 대로의 일본어에서 중역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연히 오역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
- 오토 얀Otto Jahn은 독일의 고전문헌학자, 고고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괴테 문학 연구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엄격한 문헌학적 비평을 토대로 하여 네 권 분량의 <모차르트 전기>Mozart-Biografie, 4 Bd., 1856-59; 2. Aufl., 2 Bd. 1864를 출간하였다. 이는 문헌학적 원칙에 충실한 최초의 모차르트 전기로서 후대 전기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