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전쟁터의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을 견디듯
나는 비난을 견뎌내련다,
참으로 많은 유정들이 계행이 나쁘므로.321 길든 코끼리를 전투에 끌고가고
길든 코끼리에 왕이 오른다.
길든 자가 사람들 중 으뜸이니,
그는 비난을 견뎌낸다.322 최고여라, 길든 노새들,
신두산 양마良馬들,
쿤자라 코끼리들!
그러나 그보다 최고는 자신을 길들인 자!323 그런 탈것들로는
가지 못한 곳으로 가지 못하리!
그곳은 스스로를 잘 길들인 자와 함께
길들여진 자가 길들여짐으로써 가는 곳이니.324 ‘다나팔라카’라는 이름의 쿤자라 코끼리는
발분發憤하면 제지하기 어렵다.
쿤자라 코끼리는 묶여 있으면
코끼리 숲을 떠올리며 한입도 먹지 않는다.325 둔하고 많이 먹고
잠만 자고 누워 뒹굴고
던져주는 먹이로 길러진 육중한 돼지처럼,
나태한 자는 다시금 태내에 든다.[1]「장로게」 제17송으로 결집된 다사코 장로의 게송이다.326 전에는 이 마음이 돌아다녔다,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편한 대로.
이제 나는 이 마음을 바르게 잡으리라,
채찍을 쥔 자가 발분한 코끼리를 잡듯이.[2]「장로게」 제77송으로 결집된 핫타로하푸타 장로의 게송이다.327 불방일을 즐기는 자 되어라!
스스로의 마음을 빈틈없이 지켜라!
악도惡道에서 스스로를 구하라,
수렁에 빠진 쿤자라 코끼리가 그리하듯이!328 지혜로운 벗, 훌륭하게 살아가는
명철한 도반을 만나거든,
그와 함께 기뻐하고 유념하며
모든 어려움 헤치고 유행하라!329 지혜로운 벗, 훌륭하게 살아가는
명철한 도반을 만나지 못하거든,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코끼리 숲의 코끼리처럼 홀로 유행하라!330 차라리 홀로 유행하는 것이 나으니,
어리석은 자와 벗하지 말라!
코끼리 숲의 코끼리처럼 태연히
홀로 유행하라, 악을 짓지 말라![3]제328송~제330송은 「중부」 제128경, “오염원경”에서 부처님께서 송하신 게송에서 마지막 세 송을 결집한 것이다. 그리고 제328송~제329송은 마지막 일구만 다르고 나머지는 「숫타니파타」 제45송~제46송과 동일하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코끼리 숲의 코끼리처럼” 대신 “무소의 뿔처럼”으로 비유한다.331 도리가 생겨날 때 벗들은 안락하여라,
지족知足[4]앞서 다른 품에서 설명했듯이, “지족知足”은 경의 정형구와 관련된 것이다: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染衣와 배를 유지할 걸식乞食으로 지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를 날더라도 정녕코 날개만을 지니고 날듯이,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와 배를 유지할 걸식으로 지족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은 어느 경우에나 안락하여라,
목숨이 무너질 때 공덕은 안락하여라,
일체 괴로움을 버림은 안락하여라.332 세간에서 어머니를 공경함은 안락하여라,
아버지를 공경함도 안락하여라.
세간에서 사문을 공경함은 안락하여라,
바라문을 공경함도 안락하여라.[5]제332송의 “사문을 공경함”과 “바라문을 공경함”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에서는, 낱말의 형성원리가 모두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matteyyatā”와 “petteyyatā”는 “어머니 공경”, “아버지 공경”으로 풀이하는 반면, “sāmaññatā”와 “brahmaññatā”는 “사문다움”, “바라문다움”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장부」 제26경(M iii.37)과 제30경(M iii.145)의 문맥에서는 사전의 정의와 달리, 후자를 “사문 공경”, “바라문 공경”으로 풀이함이 적절하다. 이점을 고려하면, “sāmaññatā”라는 날말은 “사문다움”과 “사문 공경”의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사문 스스로 사문다우면) “사문다움”의 뜻으로 쓰이는 반면, (재가자가 사문을 사문답게 대하면) “사문답게 함”, 즉 “사문 공경”의 뜻으로 분절되어 쓰이는 듯하다.333 계戒는 늙음에 이르까지 안락하여라,
굳건한 믿음은 안락하여라.[6]계・정・혜 삼학에서 “정定” 대신에 “굳건한 믿음”이 쓰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혜慧를 얻음은 안락하여라,
악을 짓지 않음은 안락하여라.320 Ahaṃ nāgo va saṃgāme cāpāto patitaṃ saraṃ
ativākyaṃ titikkhissaṃ dussīlo hi bahujjano.321 dantaṃ nayanti samitiṃ dantaṃ rājābhirūhati
danto seṭṭho manussesu yo ‘tivākyaṃ titikkhati.322 varam assatarā dantā ājānīyā ca sindhavā
kuñjarā ca mahānāgā, attadanto tato varaṃ.323 na hi etehi yānehi gaccheyya agataṃ disaṃ
yath’ attanā sudantena danto dantena gacchati.
324 dhanapālako nāma kuñjaro kaṭukapabhedano dunnivārayo
baddho kabalaṃ na bhuñjati, sumarati nāgavanassa kuñjaro.325 middhī yadā hoti mahagghaso ca niddāyitā samparivattasāyī
mahāvarāho va nivāpapuṭṭho punappunaṃ gabbham upeti mando.326 idaṃ pure cittam acāri cārikaṃ yenicchakaṃ yatthakāmaṃ yathāsukhaṃ
tad ajj’ ahaṃ niggahessāmi yoniso hatthippabhinnaṃ viya aṃkusaggaho.327 appamādaratā hotha, sacittam anurakkhatha,
duggā uddharath’ attānaṃ paṃke sanno va kuñjaro.328 sace labhetha nipakaṃ sahāyaṃ saddhiṃcaraṃ sādhuvihāridhīraṃ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 attamano satīmā.329 no ce labhetha nipakaṃ sahāyaṃ saddhiṃcaraṃ sādhuvihāridhīraṃ
rājā va raṭṭhaṃ vijitaṃ pahāya eko care mātaṅg’ araññe va nāgo.330 ekassa caritaṃ seyyo, n’ atthi bāle sahāyatā,
eko care na ca pāpāni kayirā appossukko mātaṅg’ araññe va nāgo.331 atthamhi jātamhi sukhā sahāyā tuṭṭhī sukhā yā itarītarena,
puññaṃ sukhaṃ jīvitasaṃkhayamhi, sabbassa dukkhassa sukhaṃ pahānaṃ.332 sukhā matteyyatā loke atho petteyyatā sukhā,
sukhā sāmaññatā loke atho brahmaññatā sukhā.333 sukhaṃ yāvajarā sīlaṃ sukhā saddhā patiṭṭhitā
sukho paññāya paṭilābho pāpānaṃ akaraṇaṃ sukhaṃ.
* 각주
1. | ↑ | 「장로게」 제17송으로 결집된 다사코 장로의 게송이다. |
2. | ↑ | 「장로게」 제77송으로 결집된 핫타로하푸타 장로의 게송이다. |
3. | ↑ | 제328송~제330송은 「중부」 제128경, “오염원경”에서 부처님께서 송하신 게송에서 마지막 세 송을 결집한 것이다. 그리고 제328송~제329송은 마지막 일구만 다르고 나머지는 「숫타니파타」 제45송~제46송과 동일하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코끼리 숲의 코끼리처럼” 대신 “무소의 뿔처럼”으로 비유한다. |
4. | ↑ | 앞서 다른 품에서 설명했듯이, “지족知足”은 경의 정형구와 관련된 것이다: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染衣와 배를 유지할 걸식乞食으로 지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를 날더라도 정녕코 날개만을 지니고 날듯이,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와 배를 유지할 걸식으로 지족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 |
5. | ↑ | 제332송의 “사문을 공경함”과 “바라문을 공경함”으로 번역한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전에서는, 낱말의 형성원리가 모두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matteyyatā”와 “petteyyatā”는 “어머니 공경”, “아버지 공경”으로 풀이하는 반면, “sāmaññatā”와 “brahmaññatā”는 “사문다움”, “바라문다움”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장부」 제26경(M iii.37)과 제30경(M iii.145)의 문맥에서는 사전의 정의와 달리, 후자를 “사문 공경”, “바라문 공경”으로 풀이함이 적절하다. 이점을 고려하면, “sāmaññatā”라는 날말은 “사문다움”과 “사문 공경”의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사문 스스로 사문다우면) “사문다움”의 뜻으로 쓰이는 반면, (재가자가 사문을 사문답게 대하면) “사문답게 함”, 즉 “사문 공경”의 뜻으로 분절되어 쓰이는 듯하다. |
6. | ↑ | 계・정・혜 삼학에서 “정定” 대신에 “굳건한 믿음”이 쓰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