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적당한 안락을 버림으로써
크나큰 안락을 보리니,
명석한 자는 적당한 안락을 버리노라,
크나큰 안락을 보면서!291 남에게 괴로움을 끼치면서
자신의 안락을 구하는 자 ―
그는 증오에 얽힌 자로서
증오에서 헤어나지 못한다.292 해야 할 일을 방치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자들 ―
방자하고 방일한 그들에게는
누漏가 증장한다.293 그러나 언제나 신지념身至念[1]“신지념身至念”은 일반적으로 몸에 대한 부정관不淨觀을 말한다. “신지념”에 대한 상세한 설법은 「중부」 제119경, “신지념경” 참고.에
잘 들어서는 자들 ―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은 굴하지 않고 해내는 자들이니,
유념하고 알아차리는 그들에게는
누漏가 사라져 간다.294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고,
크샤트리야 계급의 두 왕과
신민臣民이 있는 왕국을 죽이고
바라문은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2]제294송~제295송의 비유가 가리키는 바를 확정하기 어렵다. 경에서도 ‘아버지, 어머니, 두 왕, 왕국, 호랑이’ 등과 관련한 직접적인 비유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논서 「네티파카라나」(Nett. p.165)에서는 제294송의 앞 세 구를 두고 “법의 견처”에서 비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장로게」 제745송에서는 “다섯으로 다섯을 죽이고 바라문은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는 구절이 보인다.295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고
길상한 계급의 두 왕과
호랑이 같은 다섯째를 죽이고
바라문은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296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붓다를 유념(念佛)[3]“항상 붓다를 유념함(buddhagatā sati, 念佛)”과 “불수념佛隨念(buddhānussati)은 용어만 달리할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296송~제298송은 그 내용상 불수념佛隨念・법수념法隨念・승수념僧隨念의 내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붓다를 유념함”의 용례로는, 수닷타 장자가 붓다가 세간에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새벽에 붓다를 친견할 예정으로, “붓다를 유념하고서 누웠다(buddhagatāya satiyā nipajji)”(「상응부」 제10.8경)는 구절이 보인다. 붓다를 유념(念佛)하고 누웠던 수닷타 장자는 “밤중에 동이 튼 줄 알고 세 번이나 일어났다”고 한다.하고 있구나!297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법을 유념(念法)하고 있구나!298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승가를 유념(念僧)하고 있구나!299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신지념身至念을 하고 있구나!300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의意가 불상해不傷害를 즐거워하는구나!301 언제나 잘 깨어 있는
고타마의 제자들 ―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의意가 수행을 즐거워하는구나!302 출가하여 [홀로 있음을] 즐기기란 쉽지 않으며,
거주하기 힘든 집들은 괴롭다.[4]경에서는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가 외딴 곳에서 홀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증지부」 제10.99경에서는, “우팔리여, 은둔처나 고원의 숲, 외딴 좌와처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은둔은 행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은 즐기기 어렵다.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의意를 분명 빼앗을 것이다. 우팔리여, ‘나는 삼매를 얻지 못하였으나 은둔처나 고원의 숲, 외딴 좌와처를 추구하겠다’라고 말하는 자는, 침몰하거나 아니면 표류할 것이 예상된다.” 이 경문에 의거하여 제302송 첫 구를 “[홀로 있음을] 즐기기 쉽지 않다”라고 보완해서 번역했다.
평탄하지 못한 공동거주도 괴로우나
나그네가 되어도 괴로움이 닥치나니,
그럴진대 나그네가 되지 말며
괴로움이 닥치는 자 되지 말라.303 믿음이 있고 계戒를 갖추고
명성과 재산을 얻은 자 ―
그는 공경 받으며
어느 지역이든 교류한다.[5]제302송~제303송은 출가생활의 어려움을 설파하면서, 출가하지 못하고 재가생활을 할 경우 취해야 할 삶을 가르치는 게송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그네”는 출가생활이 아니라 출타생활을 말하는 듯하다. 아무튼 이 두 송은 「법구경」에서 설하는 (출가자 중심의) 가르침에서 약간 비껴난 데다가, “거주”, “나그네”, “명성”, “재산”, “지역 교류” 등의 낱말 해석 및 문장 분석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어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304 참된 자들은 멀리서도 드러난다,
마치 히말라야 산처럼!
참되지 못한 자들은 여기서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밤에 쏜 화살들처럼![6]제304송은 「네티파카라나」(Nett. p. 11)에서 세존의 말씀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제304송처럼 4구게가 아니라 6구게로서 “참된 자들은 위신威信으로,/ 영예와 명성으로 드러난다(te guṇehi pakāsanti kit-tiyā ca yasena ca)”라는 두 구가 추가되어 있다.305 홀로 앉고 홀로 눕고
홀로 노닒에 나태하지 않는 자 ―
그는 홀로 자신을 길들이며
숲속에서 즐기는 자 되리라!290 mattāsukhapariccāgā passe ce vipulaṃ sukhaṃ
caje mattāsukhaṃ dhīro sampassaṃ vipulaṃ sukhaṃ.291 paradukkhūpadhānena yo attano sukham icchati
verasaṃsaggasaṃsaṭṭho verā so na pamuccati.292 yaṃ hi kiccaṃ apaviddhaṃ akiccaṃ pana kayirati
unnaḷānaṃ pamattānaṃ tesaṃ vaḍḍhanti āsavā.293 yesañ ca susamāraddhā niccaṃ kāyagatā sati
akiccan te na sevanti kicce sātaccakārino,
satānaṃ sampajānānaṃ atthaṃ gacchanti āsavā.294 mātaraṃ pitaraṃ hantvā rājāno dve ca khattiye
raṭṭhaṃ sānucaraṃ hantvā anīgho yāti brāhmaṇo.295 mātaraṃ pitaraṃ hantvā rājāno dve ca sotthiye
veyyagghapañcamaṃ hantvā anīgho yāti brāhmaṇo.296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niccaṃ Buddhagatā sati.297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niccaṃ Dhammagatā sati.298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niccaṃ Saṃghagatā sati.299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niccaṃ kāyagatā sati.300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ahiṃsāya rato mano.301 suppabuddhaṃ pabujjhanti sadā Gotamasāvakā
yesaṃ divā ca ratto ca bhāvanāya rato mano.302 duppabbajjaṃ[7]팔리어에서 접두사 “dus-“는 복합어를 구성하여 “~하기(gerundive)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며, 이 경우 유재석有財釋 복합어로 분류된다. 그리고 “dup-pabbajjaṃ”처럼 복합되는 명사(“pabbajjā”)의 성에 구애받지 않고 중성 단수로 쓰인 것은, “~하기 어려움”이란 뜻의 (-a로 끝나는) 동명사 형태로 낱말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durabhiramaṃ durāvāsā gharā dukhā
dukkho ‘samānasaṃvāso, dukkhānupatit’ addhagū
tasmā na c’ addhagū siyā na ca dukkhānupatito siyā.303 saddho sīlena sampanno yasobhogasamappito
yaṃ yaṃ padesaṃ bhajati tattha tatth’ eva pūjito.304 dūre santo pakāsenti himavanto va pabbato,
asant’ ettha na dissanti rattikhittā yathā sarā.305 ekāsanaṃ ekaseyyaṃ eko caram atandito
eko damayam attānaṃ vanante ramito siyā.
* 각주
1. | ↑ | “신지념身至念”은 일반적으로 몸에 대한 부정관不淨觀을 말한다. “신지념”에 대한 상세한 설법은 「중부」 제119경, “신지념경” 참고. |
2. | ↑ | 제294송~제295송의 비유가 가리키는 바를 확정하기 어렵다. 경에서도 ‘아버지, 어머니, 두 왕, 왕국, 호랑이’ 등과 관련한 직접적인 비유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논서 「네티파카라나」(Nett. p.165)에서는 제294송의 앞 세 구를 두고 “법의 견처”에서 비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장로게」 제745송에서는 “다섯으로 다섯을 죽이고 바라문은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는 구절이 보인다. |
3. | ↑ | “항상 붓다를 유념함(buddhagatā sati, 念佛)”과 “불수념佛隨念(buddhānussati)은 용어만 달리할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296송~제298송은 그 내용상 불수념佛隨念・법수념法隨念・승수념僧隨念의 내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붓다를 유념함”의 용례로는, 수닷타 장자가 붓다가 세간에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새벽에 붓다를 친견할 예정으로, “붓다를 유념하고서 누웠다(buddhagatāya satiyā nipajji)”(「상응부」 제10.8경)는 구절이 보인다. 붓다를 유념(念佛)하고 누웠던 수닷타 장자는 “밤중에 동이 튼 줄 알고 세 번이나 일어났다”고 한다. |
4. | ↑ | 경에서는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가 외딴 곳에서 홀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증지부」 제10.99경에서는, “우팔리여, 은둔처나 고원의 숲, 외딴 좌와처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은둔은 행하기 어렵고 홀로 있음은 즐기기 어렵다. 숲은 삼매를 얻지 못한 비구의 의意를 분명 빼앗을 것이다. 우팔리여, ‘나는 삼매를 얻지 못하였으나 은둔처나 고원의 숲, 외딴 좌와처를 추구하겠다’라고 말하는 자는, 침몰하거나 아니면 표류할 것이 예상된다.” 이 경문에 의거하여 제302송 첫 구를 “[홀로 있음을] 즐기기 쉽지 않다”라고 보완해서 번역했다. |
5. | ↑ | 제302송~제303송은 출가생활의 어려움을 설파하면서, 출가하지 못하고 재가생활을 할 경우 취해야 할 삶을 가르치는 게송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그네”는 출가생활이 아니라 출타생활을 말하는 듯하다. 아무튼 이 두 송은 「법구경」에서 설하는 (출가자 중심의) 가르침에서 약간 비껴난 데다가, “거주”, “나그네”, “명성”, “재산”, “지역 교류” 등의 낱말 해석 및 문장 분석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어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
6. | ↑ | 제304송은 「네티파카라나」(Nett. p. 11)에서 세존의 말씀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제304송처럼 4구게가 아니라 6구게로서 “참된 자들은 위신威信으로,/ 영예와 명성으로 드러난다(te guṇehi pakāsanti kit-tiyā ca yasena ca)”라는 두 구가 추가되어 있다. |
7. | ↑ | 팔리어에서 접두사 “dus-“는 복합어를 구성하여 “~하기(gerundive)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며, 이 경우 유재석有財釋 복합어로 분류된다. 그리고 “dup-pabbajjaṃ”처럼 복합되는 명사(“pabbajjā”)의 성에 구애받지 않고 중성 단수로 쓰인 것은, “~하기 어려움”이란 뜻의 (-a로 끝나는) 동명사 형태로 낱말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