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는다는 유월 유두에 아이가 태어났다. 만월이 휘영청 빛나던 그 전날 밤, 아내와 나는 북한산 숲을 산책하며 어둠 속 계곡물에 흐르는 긴긴 달빛을 보았다. 물 흘러가는 소리를 따라 검은 수면 위에서 길게길게 흔들리는 은빛은 흡사 춤을 추는 듯했다. 허공의 달은 숲과 숲의 생명들도 비추고 있었다. 교교한 소나무숲 아래는 특히 아름다웠다. 온몸에 달빛을 받으며 길게 늘어뜨린 소나무 그림자를 보았다. 오늘이나 내일 너를 보았으면 좋겠구나, 보름달이 차오르는 풍광 속에서 엄마는 말했다.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뱃속의 아이는 다음날 태어났다.
이제 아이가 5개월이 되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들이 이삼십대에 겪는 과정을 나는 사십대에 비로소 겪어가고 있다. 그러나 젊은날의 거친 호흡과 형이상학적 질병들을 모두 치유하고 난 뒤 내 품에 맞아들인 아이는 작고 조용하고 경이로웠다.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젖 먹던 힘”이 얼마나 절박한 몸부림의 결과인지, “용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울지 않고 아프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커다란 위로인지, 작은 몸뚱어리를 품에 꼭 안을 때의 감동이 어떤 것인지, 아이를 내 삶에 맞아들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국, 모든 언어는 경험의 언어였다. 그리고 모든 언어는 비유이자 은유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또한 나는 부모님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음을 비로소 알았다.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님 모두 작고하셔서 나는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고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단 몇 개월 키우고 보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모든 사랑을 받았음을 알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부모님의 사랑은 크고 컸음을 실감했다. 말 그대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었다.
이 아이가 어떻게 한 생애를 살아갈 것인가. 부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목숨보다 귀한 것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것 이외에 달리 무슨 소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서구적 세계관을 좇고, 서구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가공의 비극과 절망에 빠지고 또 가공의 구원을 받으며 이삼십 대를 보냈다. 그리고 정신적 이력만큼이나 실질적으로도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삼십대 후반에 불교를 만났으니 그 얼마나 기뻤던가.
그러나 이 아이는 태중에서부터 화엄경과 새벽예불 음반을 듣고 자랐고, 서가에는 불교와 예술 관련 책들이 즐비한 집안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고향에 내려가 성묘하면서 나는 우리 집안에 드디어 태중에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부모님께 고했다. 그것은 내 생애의 벅찬 감동이자 고백이었다.
내 생애 사십년을 압축하자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로소 만났다”, “백천만겁난조우”, 이런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황무지같은 세간의 삶에서 청정한 가르침이 이 아이와 태중에서부터 만났으니, 그 기쁨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아이야, 너는 전생에 무슨 선업을 쌓았기에 이토록 이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것이냐? 아이야, 어서 오너라, 생사의 바다에서 너와 함께 배울 것이 있다.
고싱가 님.
오랫만에 들렸더니 너무나 반가운 소식 접합니다.
귀한 손님을 맞으신 인연을 축하 드립니다.
처음으로 고싱가님 얼굴도 살짝 뵙고 코가 많이 닮아나오신
아기님도 선재동자 처럼 너무 귀엽습니다.
새해에 아기님의 웃음과 함께 행복이 가득한 가족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분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남다르네요^^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의 귀염둥이 볼이 아기들의 볼이라는 걸 저는 이제야 비로소 알았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리 저리 치이며 살다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좋은 소식이라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사람’ 맞이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하를 받는 일은 언제나 기쁘군요. 새사람 맞고 보니 제가 새사람 되는 듯합니다, 하하
아기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불자로서 ‘백천만겁난조우’의 법을 만난 환희심에 공감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서양종교의 신도로 살다가 40무렵에 무상심심미묘법에 귀의하여 그전보다 훨씬 편안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목숨보다 귀한 것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발원에 동참합니다. 새해 다복하시길…
마하 반야바라밀 ()
아이를 위해 발원해 주신 그 마음 고맙습니다. 저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으셨나 보군요. 순간에서 순간으로 흐르는 아름다움을 보셔서, 많은 분들께 그 공덕 회향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저도 아이 엄마로서(이젠 다 키웠지만) 읽을수록 감동이 우러나서
이 글도 저희 카페에 스크랩하고 고싱가님의 글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괜찮겠죠?
제 덧글도 다음과 같이 붙였습니다.
부디 젊은 부부들이 고싱가님 글을 읽고 감응하길 바라면서요
덧글> 새로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축원드리면서 …
불자로서 너무도 감동적이라서 같이 읽으려고 퍼왔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부처님 가르침이 가장 귀한 것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오직 한 가지 소원…
뛰어난 아이, 어떻든 이기는 아이로 자라라고 부추기는 세태에
이렇게 결곡하고 진실한 소원 한 가지를 아이에게 빌어주시는 분께 깊은 마음으로 합장합니다
소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뭐든 괜찮겠습니다만, 제가 좀 쑥쓰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ㅎㅎ
아이 엄마로서 이젠 다 키우셨군요. 아, 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
저는 아직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생산하는 일을 삶의 계획에 넣지 않고 있습니다만, 요즘 부쩍, 역시 그게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 인 걸까요 ㅎ.
척박한 세상에, 하나의 희망을 더 해주시니, 다만 감사드릴 뿐입니다.
조심스럽게 화엄경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만, 또 덮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화엄경을 들으며 자라난 아이라면, 저같은 번복과 갈등은 거의 없을 것 같군요 ^^.
數數入火님, 감사 드립니다. 아이에게는 화엄경 전체를 읽어준 것은 아니고요^^ 보현행원품을 되풀이하여 읽어줬습니다.
고싱가 님,
오랜만에 들어와서 이리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기 소식에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네요.
(오랫동안 옹달샘 찾는 토끼처럼 물만 먹고 갔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기의 모습이 꼭 선재동자입니다.
“백천만겁난조우”의 기쁨에도 축하드립니다.
저도 50여년을 흘려보낸 후에야 그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미련한 중생인지라, 공부는 늘 그 자리여서 답답합니다.
고싱가 님의 숲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축하와 더불어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부처님의 가르침은 심심미묘하여 어린 나이에 만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자칫하다간 평생동안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늦게나마라도 “난조우”한 것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백천만겁이 지난 뒤 마침내 불법을 난조우하셨으니, 법륜이 퇴전하지 않듯, 불퇴전의 생애가 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우리 아기의 탄생을 함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북한산 아래에서 아이를 둘 낳았습니다. 축복이지요. 고싱가님 축하드립니다. 아이가 행복한 모습으로 잘 자랄겁니다. 이렇게 좋으신 아버님을 만났으니…. 오늘 친정아버지 기일에 고싱가님 글을 읽으니 더욱 아버지가 그립군요…
과연 축복받은 아이들이군요. 우리 아이도 운주님 아이들의 뒤를 따라 북한산 자락에서 나고 자랄 생각을 하니 기쁩니다. 창밖으로 경국사 숲이며 보현봉이며 늘 볼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혹시 윤대녕 소설가 아세요? 그분의 최근 수필집을 보니까 정릉사람이더군요. 김대포집 연탄구이도 나오고, 만생정의 상수리나무도 나오고, 정릉시장도 나오고, 일선사도 나오고, … 하하하, 어찌나 흥미롭던지. 그야말로 우리동네 아저씨 얘기예요.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스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사진을 보니 아기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글을 카페에 올리고 싶습니다. 아주 감동적이고, 좋은글이라 함께 나누어야 할것같습니다. 두분에게 부처님께서 새 인연 맺어주심에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불보살님의 가피속에 행복한 가정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합장.
정말 오랜만에 들렀더니 기쁜 소식이네요.
북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아기의 앞날에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아기의 탄생이 가장 가까이서 생명의 근원을 알게 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일이 아닌가합니다.
매일 고싱가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며 살면서도 글 모음에는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처음 왔다가 생명 탄생의 글을 읽고..
저도 40이 넘어서 두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는 40대 중반이 지나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생명들입니다. 귀하게 키우십시요. 그 소중함을 순간 순간 잃고 인간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분난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면 태어날 때 그 큰 바람 하나- 오직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던 그 마음의 간절함을 떠오르곤 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똘이맘님 고맙습니다. 마흔이 넘어 얻은 아이들은 참 커다란 선물인 듯합니다. 모두가 그저 평화롭기를, . . .
매일 음악을 듣습니다.
염치없이 인사도 못드리고요.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부모와 아이의 인연이 고와 보입니다.
종종 부모 자식간의 인연을 생각하거든요
divino tesoro님, 답인사가 늦어서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좋은 날들 되십시오.
귀여운 아가야~~~
너는 이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복주머니를 가지고 나왔구나…
축하한다…
선생님, 심란해 하던 중에 옛날 글들을 읽다가 감동했습니다.
저도 선생님과 함께 많은 거 배우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Sacha님, 얼굴 아는 사람끼리는 웬만하면 댓글 달지 말자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