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전을 보고 나서

고양시 아람미술관에서 1월 6일부터 2월 28일까지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의 <아프리카>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실 살가두의 사진집을 본 바 없지만, 다른 책에 실린 몇 편의 작품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가진 바 있어 기대를 품고 아람미술관을 방문했다. 작품을 보고 나니, “현존하는 세계 최고 . . .” 운운하는 수사에 대하여 거의 신뢰하지 않는 나도 세바스치앙 살가두에 대해서만큼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는 수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웅장한 힘이 있다. 죽음과 기근, 굶주림, 질병, 전쟁, 가난을 다루면서도 그의 사진은 아름답고 힘이 있다. 고통과 질병과 죽음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형용모순인 듯하지만, 그의 사진은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세월을 살아가는 아프리카 인들의 존엄과 품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름답고 힘이 있다.


파라가우 방목 캠프의 딩카족. 남부 수단, 2006.

현실을 한갓 수단으로 다루는 조형적인 아름다움뿐이라면 살가두의 사진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없다. 그와 반대로, 극도로 굶주리고 헐벗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극한의 현실에 분노하는 작가적 시선을 과도하게 투입할 경우에도 그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없다. 살가두는 그런 과도한 외부적 개입을 삼간다: “굶주리고 헐벗어도 그들 역시 위엄과 개성을 지닌,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세바스치앙 살가두)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그의 정신적 내면이 매우 포괄적임을 시사한다. 그는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 하늘과 구름, 나무, 강, 빛, 물, 사막 등의 자연 역시 존중한다. 그것들을 평등하게 대우하기 때문에 문득 고난에 처한 사람도 자연의 일부처럼 그려지고, 자연처럼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를 두고 정치적 견해를 투입하여 가난을 낭만화한다는 비난을 가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가는 그런 외적인 견해나 시선보다는 한 사람으로서 대면한 것을 정직하게 그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에티오피아 공군 미그전투기의 기관총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밤에 걸어서 티그레이 서쪽 지역의 칼렘마 캠프에 방금 도착한 수천 명의 난민들. 에티오피아, 1985.

보도사진이라면 참상과 재난을 극적이고도 충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위와 같이 격동을 가라앉히고 고요하게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러나, 밤새 사선을 넘어 아침에 한 그루 나무 아래 이르러 비로소 쉬는 이들일망정 극한 상황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아침 햇살을 받을 수도 있다. 살가두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보다는 오히려 피사체와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존엄성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때로는 어느 보도사진보다 힘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살가두의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여인들이 그토록 기품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특히 나미비아의 힘바족 유목민을 찍은 사진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문명의 바깥에 위치하여 최대의 원시성을 보존하고 있는 그들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그토록 기품이 있는 까닭에, 살가두의 힘 있는 사진들은 흡사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를 현대에 등장시킨 듯하며, 고난의 피사체를 찍은 사진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상을 눈앞에 현시하는 듯하다.


구르마 라루스 지역에서 물과 식량을 구하는 난민. 말리, 1985.

살가두의 사진은 작품명이 따로 있지 않고 그 대신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단문이 따라붙는다. 위의 사진들에 대한 설명 역시 그의 것이다. 그가 대면한 현실은 1984~85년 사헬의 대가뭄과 기근, 1990년대 르완다 내전과 난민 등 아프리카의 극악한 현실이며, 그 현실이 벌어지는 땅과 하늘과 나무와 사막과 빛과 어둠의 세계이다. 그리고 기근과 내전에 시달렸던 지난 현실뿐만 아니라 최근의 건강한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까지 기록했다. 그만큼 아프리카는 다양성이 있는 대륙이며, 단순히 동정이나 연민만 가지고 보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위대함이 숨어 있는 대륙이다. 살가두는 그의 사진을 통하여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을 다시 보기를 바라고 있다.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전은 작년에 일본에서 먼저 열리고 이어서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일본 전시에 방문한 살가두를 동아일보가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 아프리카 사진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36년 동안 내가 아프리카에서 해온 작업의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다. 분쟁, 기아, 풍경, 야생동물 등 다양한 사진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내 시각, 내가 보고 배운 것을 보여주는 전시다. 그곳은 굶주림과 분쟁 이상의 다양성을 지닌 대륙이다. 내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다시 바라보면 좋겠다.

— 동아일보 인터뷰, “그들과 하나됐다 느낄 때 난 비로소 카메라를 든다”

그는 그가 아프리카에서 보고 배운 것을 그의 시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뚜렷한 예술가적 시각을 가지고 피사체에 접근하는 것도 사진을 찍는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살가두는 자신의 시각을 가지지 않은 채 피사체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보고 그들로부터 배운 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배운 그것이 그의 시각이라고 지칭된다. 그는 그들과 하나가 됐다고 생각할 때 카메라를 든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살가두가 1970년대부터 최근 2006년까지 아프리카를 찍은 대표적 사진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최근 작업하고 있는 창세기 프로젝트 사진까지 전시되고 있어 그가 자연을 대하는 시선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힘이 있는 것은 자연만을 다룬 사진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도록은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도록이다. 사진을 명함만한 크기로 싣고 있어서 전시공간에서 보았을 때의 커다란 감동을 모두 앗아간다.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아프리카 사진전을 보고 나서”에 대한 4개의 댓글

  • 헐벗은 난민의 사진일뿐인데 두번째 사진은 마치 태고적 신화속의 한 장면 같군요. 잘 보고 갑니다.

    이선일
  • 고통과 질병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과 힘을 지니려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자신을 비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으로 자신을 채워야 저런 사진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밤새 사선을 넘어온 사람도 아침햇살 아래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깊은 느낌이 옵니다.

    강물
  • 얼마 전의 매그넘 전시회 때에는 무척이나 붐볐던 듯한데, 살가두의 사진전이 그만한 시선을 못 끌고 있는 듯해 아쉽습니다. 제가 보기엔 살가두의 사진이 매그넘 사진에 비해 월등한데 말이죠.

    고싱가
  • 처음으로 그림이 번잡스럽고, 사진이 정적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살가두였습니다. 그리고 갸웃 거렸지요. 사람이, 숭고함과 비루함이……
    고마워요 출곤선배.
    덕분에 도서관에서 사진집 빌려다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道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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