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 학술국이 소위 “난네를-노트”에 있는 협주곡 한 악장과 프렐루디움 한 곡이 어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다.
모차르테움 재단 학술국장 울리히 라이징거Ulrich Leisinger는 저자 서명이 없이 전승된 클라비어 소품 두 곡을 확실성에 가까운 개연성을 가지고 어린 모차르트의 작품들임을 확인했는데, 문제가 된 것은 난테를-노트 말미에 실려 있는 협주곡 한 악장과 프렐루디움 한 곡이다. 난네를-노트는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1759년 여덟 살의 딸 마리아 안나 (“난네를”)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이 노트는 연습곡 이외에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첫 작곡들을 포함하고 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필사로 전승된 이 클라비어 두 곡은 이제까지 익명의 작곡으로 여겨졌다. 문서검증과 양식적 분석에 바탕한 울리히 라이징거의 학문적 추론은 확실성에 가까운 개연성이 있다. 이 곡들은 기보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모차르트, 즉 자신의 작품을 아버지에게 기보해 달라고 피아노로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작품들인 것이다. 레오폴트는 아들이 작곡한 곡들 중 일부만 아들의 이름을 병기했다.
울리히 라이징거의 말:
“수준 높은 거장의 몰토 알레그로와 관련된 것은 분명히 G장조 쳄발로 협주곡 1악장입니다. 이 곡에서 쳄발로 성부의 독주만 기보되어 있고, 오케스트라 리토르넬로는 거의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18세기 잘츠부르크의 클라비어 책들은 많이 있지만, 어느 책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교를 요구하는 곡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필사본은 레오폴트의 휘갈긴 필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작곡할 때의 전형적인 쓰기방식이다. 양식적인 근거에서 레오폴트는 저자일 가능성이 없다. 고도의 기교적 요구사항들과 작곡가적 경험이,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저자로 볼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에서 악보를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플로리안 비르작Florian Birsak의 쳄발로 연주로 새로 발견된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
새로 발견된 모차르트 자필 악보
– 피아노 소나타 A장조 K.331 중 3악장
http://youtu.be/XwRc7ULepDA (피아노 졸탄 코지츠)
모차르트가 스타는 스타인 모양이다. 그가 직접 쓴 악보 4장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언론이 떠들썩하다. 어떤 작품의 악보일까,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서 외신을 모두 뒤져 보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A장조 K.331의 뒷부분 자필 악보 4장이라고 한다. 이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은 유명한 인데, 자필 악보는 맨 마지막 1장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 보관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필사본을 인쇄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4장과 기존의 1장을 합치면 모차르트 의 자필악보가 완성되는 셈이며, 이것을 연주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그대로 을 처음 듣게 된다니, 그를 사랑하는 팬으로서는 설레는 일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국립 셰체니 도서관, 한구석에서 잠자던 이 악보를 발견한 사람은 이 도서관의 음악 문서 담당인 발라즈 미쿠시(42)란 분이다. 그는 컴컴한 서고 사이에서 문서를 정리하다가 빛바랜 노란 악보를 집어들었다. AFP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 “딱 보니까 모차르트 필적과 비슷해 보였지요. 악보를 읽어보니 모차르트의 유명한 A장조 소나타였고, 저는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이 도서관에 부임한 그는, 지난 5년 동안 구석구석 먼지 쌓인 악보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모차르트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악보를 발견한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지요.” 그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마지막 1장과 새로 발견한 4장을 연결해 보았고, 세계 각처의 모차르트 전문가들에게 사진을 보내 확인을 요청했다. 진짜가 맞다는 확답을 받았다.
A장조 소나타 K.331은 무척 유명한 곡이다. 특히 3악장 ‘터키 풍의 론도’는 이나 40번 교향곡의 첫 주제처럼 딱 들으면 누구나 “아, 그 곡!” 할 수 있는 친숙한 선율이다. 프랑스의 음악학자 조르쥬 생푸아는 모차르트가 파리에 머물던 1778년에 이 곡을 작곡했다고 주장했다. 우아한 분위기의 1악장 ‘주제와 변주’, 프랑스 살롱 풍의 2악장 ‘메뉴엣’,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국 취향의 3악장 ‘터키 풍의 론도’ 때문이었다.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 하나도 없는 프랑스 모음곡 풍의 구성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악보 용지와 잉크 연도를 분석한 결과 이 주장은 틀렸다는 게 밝혀졌다.
모차르트는 1782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했는데, 아버지와 누나가 강력히 반대하자 가족의 동의 없이 빈 슈테판 성당에서 식을 올렸다. 이듬해 3월, 모차르트는 C단조를 비롯한 새 작품들을 갖고 고향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다. 결혼에 대한 가족들의 사후승인을 구하는 게 제일 큰 목적이었다. 이 소나타는 모차르트 부부가 잘츠부르크에 머물던 1783년 3월에서 11월 사이에 작곡한 걸로 결론이 났다. 자필악보의 마지막 한 장이 잘츠부르크에서 발견된 것도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4장의 자필악보는 어떻게 헝가리로 가게 됐을까? 모차르트는 헝가리를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미스테리다. 당시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이었기 때문에 두 나라는 하나였다. 하이든이 일한 에스터하차 궁전은 지금 헝가리 영토고, 이번에 악보를 발견한 발라즈 미쿠시가 하이든 전문가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누가 어떤 경로로 이 악보를 부다페스트까지 가져갔는지 알려줄 단서는 아직 없다.
셰체니 도서관은 1802년 부유한 귀족인 페렌츠 셰체니 백작이 설립했다. 발라즈 미쿠시의 의견이다. “셰체니 백작은 빈의 음악계를 잘 알고 교류도 했습니다. 악보 1장과 나머지 4장이 따로 있는 것은, 부유한 후원자에게 모차르트가 악보를 기념품으로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헝가리에서 누군가 잘츠부르크로 와서 이 악보를 받아갔는지, 다른 어떤 사연이 있는지, 좀 더 정밀한 조사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악보는 9월 26일, 이 도서관 6층 행사장에서 열린 을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고 한다. 발라즈 미쿠시는 란 주제로 강연했고,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의 울리히 라이징어 박사가 새 악보의 내용과 의의를 해설했고, 피아니스트 졸탄 코시츠가 새 악보를 사용해서, 모차르트 시대와 똑같은 발터 포르테피아노로 이 소나타 전 악장을 연주했다고 한다. 강연 내용과 연주 동영상은 아직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다.
발라즈 미쿠시의 말이다. “새 악보로 연주하면 음표와 리듬의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곡에 대한 평가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모차르트가 원했던 표현이 어떤 것인지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새로 발견된 4장의 악보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 있는 마지막 1장과 합쳐서 사본을 뜬 뒤, 다시 셰체니 도서관에서 보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9월 26일, 모차르트가 초연한 그대로 이 곡을 한 번 더 초연한 분은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졸탄 코지츠였다. 이 연주 동영상을 아직 볼 수 없으니, 이 분이 기존 악보로 연주한 K.331을 감상하면서 새 연주를 기다려 보면 어떨까. 모차르트(1756~1791) 연구는 참 멀고 복잡한 길이다. 그가 태어난 지 258년, 세상을 떠난지 22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모르는 게 이렇게 많다니….
헉, 댓글로 두기엔 아까운 글… 잘 읽었습니다!